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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정리하고 다른 나라로 … 부자는 시장보다 빠르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12년 만에 최고로 올랐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환전소 앞에서 한 남성이 환율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AFP=연합뉴스]
서울 강남에 사는 부자 고객 K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관리 스타일을 확 바꿨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본인이 직접 투자대상이나 금융상품을 고르기보다 거래하는 금융회사의 담당 프라이빗뱅커(PB)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투자했던 금융상품에서 큰 손실을 보게 되자 K씨는 직접 자산관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신문을 꼼꼼하게 읽으며 국내외 경제동향을 파악했고, 의문이 생기면 담당 PB나 전문가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풀었다.

2009년 초 K씨는 큰 폭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던 주식형 펀드를 미련 없이 정리했다. 펀드에서 찾은 돈으로 당시 주가가 급락한 국내 우량기업의 주식에 집중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다만 과거 주식에 직접 투자했다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경험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K씨는 투자자문사가 운용하는 자문형 랩에 가입했다.

K씨가 기대한 대로 2009년 코스피지수는 50% 넘게 올랐다. 운도 따랐는지 그가 돈을 맡긴 투자자문사는 그해에 업계 1위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K씨는 코스피지수 상승률의 두 배나 되는 수익을 올렸다. 금융위기로 인한 손실을 전부 만회하고도 큰 수익을 남긴 것이다.

K씨는 다음 투자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자문형 랩에 맡긴 돈에서 일부를 찾아 차익을 실현했다. 수없이 발품을 팔며 정보를 수집하고 고민한 끝에 한 증권사를 통해 브라질 국채에 투자했다. K씨는 금융위기 이전엔 해외 시장에 별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선진국도 아닌 신흥국 채권에 투자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면밀히 분석해 볼 때 브라질 채권이 비교적 안정적이면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9년 말 브라질 채권은 세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째는 고금리였다. 10년 만기 브라질 국채의 수익률은 연 12%가 넘었다. 둘째는 국내 비과세 혜택이었다. 한국과 브라질의 조세 협약에 따라 브라질 국채 투자로 얻은 이자수익과 환차익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었던 K씨에게 비과세 혜택은 큰 매력이었다. 다만 브라질 정부에 2%의 금융거래세(토빈세)는 내야 했다. 외국인이 투자 목적으로 브라질 헤알화를 환전할 때 적용되는 세율이었다. 하지만 채권 금리가 연 12%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최초 환전 시 2%의 세금을 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셋째는 브라질 경제가 호조를 보일수록 환차익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헤알화의 가치는 최근 2년 동안 미국 달러에 비해 50%나 올랐다.

브라질 채권은 K씨의 투자 이후 부자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관련 상품을 내놓는 증권사도 늘어났고 자금도 몰렸다. 반면 브라질 정부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해외 자금이 브라질 금융시장으로 지나치게 몰린다고 보고 금융거래 세율을 2%에서 6%로 인상했다. 최근 브라질 정부는 환율 방어에도 고심하고 있다. 헤알화의 가치가 달러에 비해 12년 만에 가장 비싼 수준으로 오르면서 수출 경쟁력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헤알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환차손이 생길 가능성이 생겼다.

K씨는 브라질 채권을 정리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 자문형 랩에 맡긴 돈도 찾을 것을 검토 중이다. 초창기 자문형 랩은 높은 수익률로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이후 자금이 ‘소나기’처럼 몰리면서 덩치가 지나치게 커졌다. 자문형 랩이란 상품 특유의 탄력적인 운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부자 고객들이 초기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두면→언론이 경쟁적으로 소개하고→그 결과 시중 자금이 몰려→해당 금융상품의 장점이 희석되는 현상은 자문형 랩뿐 아니라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렇다면 K씨가 다음 순서로 주목하고 있는 투자대상은 무엇일까. 사실 세계 어디를 살펴봐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올 초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민주화 시위는 산유국이 집중된 중동 지역으로 번져나갔고, 동일본 대지진은 그렇지 않아도 장기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에 ‘강한 펀치’를 날렸다. 유럽에선 포르투갈·그리스·아일랜드 등에 이어 선진 7개국(G7)의 일원인 이탈리아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독일·프랑스 등 비교적 잘산다는 나라의 은행들도 남유럽에 물린 돈 때문에 초긴장 상태다.

K씨도 세계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 투자는 아무래도 망설여진다고 한다. 대신 신흥국 국공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미 브라질 국채로 성공을 거둔 경험에서 해외채권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에는 10여 개 신흥국에 골고루 투자하는 펀드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분산 투자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흥국 국공채 펀드는 2000년대 들어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가면서 재정상황도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의 국공채에 현지 통화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브라질을 포함해 헝가리·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멕시코·폴란드·남아공·태국·터키·러시아 등 10개국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이들 국가의 국공채 금리는 평균 연 7% 수준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평가를 기준으로 한 국가신용등급은 평균 A- 수준이어서 부도 위험은 낮은 편이다.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연 7%의 채권 이자를 받는 것은 물론 환차익도 노릴 수 있다.

K씨는 환차익 가능성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브라질을 제외한 주요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최근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미국 달러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해당 펀드의 수익률에서 환차익 부분은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은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K씨의 마음을 급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언젠가 세계 금융시장이 안정되면 현재 약세인 신흥국의 통화가치도 강세로 돌아설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렇다면 신흥국 채권의 투자 적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K씨는 보고 있다.

이번에도 K씨가 투자에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K씨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부자들은 남들이 좋다고 해서 따라가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K씨의 성공 비결은 당장의 시장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시장이 흘러갈 방향을 예측하며 ‘길목을 지키는 투자’를 한 데 있다. 부자는 시장보다 빠르다. 그리고 시장보다 빨라야 부자가 될 수 있다.




윤설희(48)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국민은행에 들어갔다. 25년간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명동중앙 지점장과 고객만족부장, 서초·도곡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장을 거쳐 현재는 압구정 PB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핀란드 헬싱키대에서 MBA를 받았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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