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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등장 기다리는 사람들 ‘잭’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목을 비틀어 뼈가 꺾이는 효과음, 고막을 찢을 듯한 총소리, 유혈이 낭자한 시체들, 비장미 넘치는 음악과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무대-.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답게 거칠 것 없이 화끈하다. 체코 뮤지컬 원작을 2009년 ‘살인마 잭’이란 타이틀로 초연한 이후 2010년 창작에 준하는 각색을 더해 새롭게 탄생한 블록버스터 뮤지컬 ‘잭 더 리퍼’. 올해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한층 진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뮤지컬 ‘잭 더 리퍼’, 8월 14일까지 충무아트홀

1888년 런던에서 일어난 미해결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잭 더 리퍼. 최소 5명 이상의 매춘부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실존인물이지만 12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정체에 대해 온갖 주장과 억측이 끊이지 않는 영원한 미스터리의 주인공이다. 살인마는 과연 누구인가? 결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기에 다양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로, 한 세기 넘게 영화와 소설 등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돼 왔다. 뮤지컬 ‘잭 더 리퍼’는 당시 범인이 피해자의 장기를 예리한 솜씨로 적출해 갔다는 점에서 같은 시기 에든버러에서 발생한 시체 해부를 위한 인간사냥 사건과의 접점을 찾는다. ‘잔인한 살인마의 정체’라는 모티브를 혼돈의 전근대를 배경으로 과학과 윤리, 자본과 개인, 진실과 허상의 불균형 속에 신음하는 인간 군상에 로맨틱 스릴러를 입힌 서사로 풀어냈다.

윤리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는 순수한 청년의사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묘사한 점, 선악이 교차·분리되는 클라이맥스에 무게중심이 쏠린다는 점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짝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을 영리하게 짚어내며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서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신성우, 안재욱, 유준상, 엄기준, 이지훈 등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들과 이건명, 민영기, 이정렬, 김법래 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포진한 초호화 캐스팅, 디테일이 뛰어난 회전무대의 극적인 사용과 낭만적인 무대미술,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은 일단 눈과 귀를 호사롭게 한다. 짜릿한 스릴러에 안타까운 로맨스를 더해 감각적 자극을 극대화하면서도 인간 내면을 고발하는 주제의식으로 나름 작품성도 추구했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도 유머코드로 긴장감을 조절하며 공포와 웃음을 적절히 섞어 대중의 취향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욕심부렸다.

19세기 말 런던. ‘달콤한 와인에 취한’ 화려한 낭만의 도시의 뒷골목으로 공장 잿가루가 눈처럼 흩날리고 거리엔 굶어죽는 노동자로 넘쳐나던 모순된 사회, ‘연쇄 살인마’의 등장은 반복되는 뉴스가 지루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흥미진진한 이슈였다. ‘다음 살인은 얼마나 더 끔찍해질지’ 은근히 기대하는 군중심리는 ‘더 보여달라’며 사건을 원하고, 그런 대중의 취향을 좇아 신문기자 먼로는 특종을 ‘만들어 낸다’. 형사 앤더슨은 범인을 잡기 위해 살인 현장을 연출해야 하고, 의사 다니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장기이식을 연구하지만 장기를 구하려면 살인을 해야 한다. 저마다 실존적 모순에 시달리는 앞뒤가 뒤바뀐 역설의 세상이다. 살인마 ‘잭’을 잡아야 한다고 도시 전체가 들썩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잭’을 강렬히 원하고 있는 것. ‘잭’이 특정인물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이름을 모르는 남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이름이라는 사실은 결국 살인마는 그의 등장을 기다리는 모든 이의 내면에 있는 악마임을 환기시킨다. ‘내가 바로 잭’인 것이다. 그를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이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액자 구조와 수수께끼를 던지고 또 해결하는 수미일관의 구도 속에 반전이 돋보이는 스토리라인이 펼쳐지는 퍼즐 맞추기식 전개는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며 클라이맥스로의 몰입을 이끈다. 선과 악이 교차하며 파국으로 치닫는 클라이맥스는 ‘지킬 앤 하이드’를 무한 연상시키면서도 그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오지 못하지만, 카타르시스 대신 드라이아이스를 터뜨려 물리적 시원함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강한 여운을 남기는 엔딩의 비장한 음악은 꽤 오래도록 귓전에 맴돌고, 한껏 폼 잡고 들어가는 퍼포먼스로 전원을 기립시키는 커튼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집중적인 감동을 주는 ‘한 방’이 약하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할 현란한 종합선물세트로 제 몫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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