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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한국 공대 조로화 현상







이철호
논설위원




모처럼 우리 공대생들을 접할 두 번의 기회를 가졌다. 그 첫 기회가 지난달 LG그룹의 글로벌 챌린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 국내 대학생들의 해외 현지 탐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우승자에겐 LG 입사를 보장하는 특전을 내건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또 한 번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매진 컵’ 대회를 현지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전 세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의 우열을 가리는 대회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출신 공대생들의 바람이 거셌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공대가 이대로 흘러가면 우리 미래는 암울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국 공대생들은 녹색공장이나 아프리카 구호처럼 인기 있는 이슈에만 비슷비슷한 연구과제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영어 소통 능력은 한참 떨어졌다. 미리 달달 외운 자기 소개나 프레젠테이션은 그런대로 영어로 진행했지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영어 질문에는 허둥대기 일쑤였다.



 이에 비해 이매진 컵 대회에 출전한 브릭스 출신의 공대생들은 자신감에 넘쳤다. 이들에게 인도주의는 사치였다. 오히려 생활 주변의 참신한 소재를 찾아 발상의 전환을 한 출품작을 잇따라 선보였다. 중국 칭화대 팀의 경우 딱딱한 병원 진료를 재미있게 바꾼 소프트웨어로 눈길을 끌었다. 컴퓨터 화면에 흘러나오는 간단한 악보를 따라 게임하듯 하모니카를 불면 자동으로 폐활량이 측정되는 프로그램이다. 뛰어난 창의성이 곳곳에서 번뜩였고 곧바로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아이디어들이다.



 브릭스 출신의 공대생들은 모두 영어를 불편 없이 구사했다. 놀라운 것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엔 공대가 가장 인기가 있다. 열심히 하면 가장 크게 성공하고, 미래가 열려 있다”고 입을 모은 점이다. 이매진 컵 대회의 실무 책임자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존 페레라 전무는 “브릭스 국가들은 공대생만 해도 수백만 명이 넘는다. 현지 정부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공대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브릭스 출전자들은 이미 미국 명문대학에 유학자격을 확보한 상태였다. 반면 전통적 강호였던 한국과 일본팀은 1차전부터 줄줄이 맥을 못 추었다.



 한국의 공대도 자신감에 찼던 시절이 있었다. 한참 경제가 성장할 때엔 화학·전자·조선공학과 등에 우수 인재들이 몰렸다. 바로 한국 경제의 성공신화를 쓴 주역들이다. 그런 공대가 지금은 찬밥 신세다. 정부가 특별법까지 만들어 국가예산으로 과학영재를 지원한 부산의 한국 영재학교가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 몰려들었다는 1기 졸업생의 경우 상당수가 현재 의대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다. 심각한 이공계 기피현상의 현주소다.



 반면 브릭스 공대들의 추격전은 거세다. 이매진 컵 대회에 나온 브릭스 공대생들은 공통적으로 창업을 꿈꾸고 있었다. 실제로 과거의 출품작 가운데 벤처 캐피털의 지원을 받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경우가 한둘 아니다. 브릭스 국가들은 자신감과 능력을 갖춘 이공계 인재들을 바탕으로 머지않아 기술 집약적 산업구조로 전환을 시도할 게 분명하다. 한국 공대생들이 편안한 삶에 한눈을 파는 사이 브릭스 공대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중심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로마시대 이후 세계적 제국들은 군사강국과 제조업 대국을 거쳐 금융대국에 올라선 뒤 서서히 몰락하는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 선진국으로 가려면 한참 더 제조업에 매달려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도 생산대국은커녕 공대부터 너무 일찍 조로화(早老化) 현상을 보이고 있다. 뉴욕에서 이매진 컵 대회를 지켜보면서 이대로 가면 브릭스에 뒷덜미 잡히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때로는 눈앞의 정치적 표(票)보다 역사의 긴 흐름을 살피는 안목이 필요한 법이다. 지금 우리는 무료급식과 반값 등록금보다 훨씬 중요한 대목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뉴욕에서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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