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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절린 카터 ‘퍼스트레이디 라이벌’ 베티 장례식 추도





“베티는 진실 말하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베티 포드(左), 로절린 카터(右)



“고(故) 베티 포드 여사는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암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던 때도 그분은 같은 병으로 신음하는 환자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은 12일 오후 2시(한국시간 13일 오전 6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부인 베티 여사의 장례식에서 고인을 이렇게 추모했다. 이날 AP통신 등은 지난 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한 베티 여사의 장례식이 12일 캘리포니아주 팜데저트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미 현지 언론들은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의 부인으로 맞붙었던 베티와 로절린의 인연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의 남편인 제럴드 포드와 지미 카터는 제39대 대선에서 격돌했다. 당시 이들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격전을 벌였다. 정치적 이념이 다른 만큼 서로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대선은 물가 급등을 억제하지 못한 포드 정부의 인기 하락으로 카터의 승리로 끝났다. 선거 후에도 양측의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베티는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의 화해는 카터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한 이후 이뤄졌다. 재선에 실패한 동병상련의 아픔이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은 그 뒤 둘도 없는 친구로 여생을 함께했다. 정치적 라이벌에서 인생의 동지로 바뀐 것이다. 포드 전 대통령이 “카터와 나는 단호하고 신념이 강한 여성과 결혼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할 만큼 베티와 로절린의 성격은 유사했다.



 베티는 생전에 미국 정치에서 정쟁 대신 화합과 우정을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장례식에는 정파를 넘어 다양한 인사가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을 비롯해 낸시 레이건, 힐러리 클린턴 등 전·현직 퍼스트레이디 4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용기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불참했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로 날아왔다. 미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의 뉴스해설가인 코키 로버츠는 추도사에서 “베티 여사는 열정적이었으며 훌륭한 역할 모델이었다”며 “그의 솔직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됐다”고 애도했다. 또 “고인은 생전에 당시 금기시됐던 유방암 투병과 약물 중독 사실을 공개했으며 이는 다른 환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티는 생전에 로버츠에게 자신이 죽으면 추도사를 읽어 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1918년 베티는 첫 남편과 이혼하고 5년 뒤 당시 해군 중위였던 제럴드 포드와 만나 48년 결혼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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