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비즈 칼럼] 오픈프라이스제가 실패한 이유







이기헌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세상 여러 가지 말 중 가장 솔깃하게 들리는 말은 뭘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깎아줄게요’라는 말이 그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같은 상품이라도 제값을 다 주지 않고 깎아서 싸게 살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시중에는 ‘50% 할인’ ‘1+1’은 기본이고, ‘20만원어치 사면 상품권을 드립니다’라고 하거나 ‘포인트 적립 팍팍’ 하는 곳도 많다. ‘연중할인, 상시할인’이란 말도 낯설지 않다.



 한때 화장품은 ‘80% 이상 할인’이 아니면 깎아주는 축에도 못 끼이는 ‘할인 전성’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주 만나거나 권하면 식상한 법. 이렇게 이상한 할인율을 만드는 주범인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그냥 판매가격만 표시하는 오픈프라이스제를 시행하게 됐다. 1999년 가전제품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동네 수퍼가 주무대인 아이스크림이나 빙과·과자에까지 도입됐다.



 -그러나 시행한 지 1년 만에 빙과·아이스크림·과자·라면 같은 가공식품 오픈프라이스제는 논란 끝에 정부가 철회하기로 발표했다. 정부는 왜 현 제도를 철회하고 다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로 회귀했을까. 오픈프라이스제 일년 시행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도대체 판매가격이 얼마인지, 싼지 비싼지 가늠할 수 없었고, 어떤 곳은 지나치게 많이 가격을 올려 가장 낮은 곳보다 2~3배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불편과 불만이 매우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오픈프라이스 제도는 가격비교 정보가 제대로 생산·유통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제도다. 소비자가 가격비교를 해서 제일 싼 판매점을 찾고, 그곳에서 상품을 구매해야만 다른 판매점도 손님을 끌기 위해 가격을 내리는 선순환 과정이 반복된다. 그런데 빙과류나 과자류 상품은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가격비교 정보가 거의 없다. 또 빙과류가 가장 많이 팔리는 동네 수퍼 같은 중소판매점은 판매가격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가격을 알 수 없어 불만이다.



 수퍼는 상품을 공급해 주는 제조업체 영업소나 대리점에서 안내해 주는 대로 영업하는 경향도 있다. 또 다른 제품보다 가까운 동네 수퍼에서 많이 사먹는 구조다. 이런 점에서 가공식품 분야는 상품 특성이나 유통구조상 오픈프라이스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한 여건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그럼 앞으로 가공식품의 가격표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정부는 다시 상품에 표시되는 권장소비자격이 소비자에게 부족한 가격정보 역할을 해서 가격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그 가격 이상으로 판매가격을 인상하는 것을 방지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50% 이상 할인 아니면 할인도 아닌 ‘코미디 할인율’이 재등장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자들이 전적으로 결정해 표시하는 희망소매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정부나 소비자의 보이지 않는 감시와 압력이 작용해야 할 것이다. 또 ‘T-프라이스’같은 가격정보 공개시스템이 더욱 보강돼 소비자가 충분히, 쉽게 얻을 수 있도록 가격정보를 공급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소비자 자신들이 구매했던 내용(구매영수증)을 스캐닝해 축적하고, 가공함으로써 ‘살아있는 실시간 가격정보’를 만들고 공유하는 시스템도 등장했다고 한다. 소비자가 직접 구축하는 이런 정보가 국내에도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기헌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