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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나가수’ 감동과 평창 승리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고백하면 나는 ‘나가수’(나는 가수다) ‘광(狂)팬’이다. 본방(本放)을 사수(死守)한다. 혹시 어쩌다 놓쳤을 때는 기꺼이 돈을 내고 IPTV로 본다. 일주일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비하면 500원이나 1000원이 아깝지 않다. 콜로세움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짜릿한 승부에 취해서가 아니다. 감동과 재미 때문이다.



 프로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최고 가수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무대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고수(高手)들의 긴장하는 모습에선 인간미가 느껴진다. 경쟁하면서도 서로 격려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꼴찌를 한 가수는 결과에 승복하고 깨끗이 물러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탈락자 본인도 안다. 패자(敗者)는 없고, 모두가 이기는 상생의 축제다.



 500명의 청중평가단이 따지는 것은 가수들의 노래 실력이 아니다. 감동이다. 각각의 정상급 가수들이 가창력과 퍼포먼스, 또 자신만의 색깔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감동의 크기와 깊이를 재는 것이다. 가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편곡자와 매니저, 스태프 등 가수를 받쳐주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일러스트=강일구]






 일주일 전 남아공 더반에서 개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는 또 하나의 나가수 경연이었다. 감동의 여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알프스나 로키는 없지만 더 높고 강건한 국민의 의지가 있는 나라…10년의 도전, 2번의 실패를 결국 성공의 디딤돌로 삼은 나라…여기까지의 성공은 시작일 뿐, 여기부터의 도전이 더 아름다울 나라…’. 가슴 찡한 광고카피가 어제 아침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를 놓고 평창, 뮌헨, 안시 세 개 도시가 경연을 벌였고, 95명의 청중평가단은 압도적 표차로 평창의 손을 들어줬다. 두 번의 탈락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평창의 공연이 IOC 위원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이다.



 유치단에 참가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더반의 감동을 만들어낸 주역들이다. 공(功)의 크기를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 안다.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에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웠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연코 ‘피겨 여왕’ 김연아다. 무엇보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그는 한국이 끈질기게 겨울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했다. 깜찍하고, 호소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은 청중평가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서도 국민의 46.5%가 1등 공신으로 김 선수를 꼽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19.5%), 이명박 대통령(18.6%), 조양호 평창유치위원장(9.1%),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5.8%)이 뒤를 이었다. 역시 사람들 눈은 비슷한 모양이다.



 더반판(版) 나가수 공연의 가장 큰 감동은 누가 뭐래도 하나 된 코리아의 힘이었다. 유치단은 신분과 소속, 출신과 정파, 세대와 남녀를 떠나 하나가 됐다. 정치 권력과 재벌 권력이 손을 잡았고, 정계와 재계, 여와 야,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했다. 나가수에 출연한 가수가 최상의 팀워크로 최고의 공연을 펼쳐보이듯 대한민국이 가진 인적 역량이 하나로 똘똘 뭉쳐 최고의 감동을 만들어냈다. 국민의 92.4%가 평창의 올림픽 유치가 잘 된 일이라고 대답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민도 하나가 돼 올림픽 유치를 성원했다. 뮌헨과 안시는 이 점에서 평창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반의 승전보가 전해진 다음 날 실시된 여론조사(아산정책연구소)에서 나타난 이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41.3%로, 지난달(33.9%)에 비해 7.4%포인트 올랐다. 평창의 승리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감격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직접 마이크를 잡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만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原電) 수주 때처럼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되레 지지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이치를 이제야 깨달은 걸까.



 이 대통령은 얼마 전 나가수에 빗대 공직자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투표해서 무자비하게 무조건 떨어져 나간다”면서 “우리에게도 그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은 임기 1년반 동안 대통령 자신부터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파와 소속을 떠나 대한민국이 가진 인적 자원과 역량을 총결집해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더반판 나가수 경연 승리의 진정한 교훈이다. 미리 선을 그어 자기 편만 감싸는 협량(狹量)이 아니라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력이 관건이다. 대통령은 특정 계층이나 정파를 대변하는 소통령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통령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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