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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부가 운영하는 어떤 카지노







심상복
논설위원




20년간 매달 500만원씩 준다고? 물론 엄청난 전제가 있다. 정부가 이달부터 팔기 시작한 ‘연금복권 1등에 당첨되면’이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도입한 이 복권은 1등 당첨금이 12억원이다. 이걸 240개월간 매달 500만원씩 나눠 준다. 연금식 복권은 처음이다. 통상 3억원 이상의 당첨금은 세금이 33%이지만 연금식이라 22%의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장당 구입가는 1000원이고, 추첨은 매주 수요일 저녁에 한다. 매주 630만 장을 발행하는데 1등은 두 명 뽑는다. 따라서 1등 당첨확률은 315만분의 1이다. 1등만 연금식이고, 2등 이하는 모두 기존 복권과 같이 일시금으로 준다. 당첨자가 사망하면 가족에게 상속도 된다.



 자식 교육과 뒷바라지에 노후준비는 하려야 할 수 없는 이들에겐 귀가 번쩍 뜨일 소리다. 이미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부머들(1955~63년생)에게도 복음(福音) 같은 소리다. 그들은 스스로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선 독립해야 할 첫 세대라고 말한다. 이들 입에선 ‘준비해 놓은 돈은 없는데 수명만 길어지면 어쩌란 말이냐’는 탄식도 흘러나온다. 이런 때 정말 기막힌 상품이 나왔다. 월급쟁이로 매달 국민연금을 칼같이 부어도 65세가 넘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130만원 정도다. 그런데 한 방만 잘 맞으면 매달 500만원이란다.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복권, 지금 없어서 못 판다. 지난 6일 추첨한 첫 회 판매분은 나흘 만에 630만 장이 몽땅 팔렸다. 오늘 저녁 추첨하는 2회분도 매진됐고, 벌써 3회분을 앞당겨 파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인기 대폭발이다. 연금복권은 242회차로 판매를 종료한 팝콘복권보다 20배 가까운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시작과 함께 대박을 터뜨린 곳은 복권위원회다. 담당 공무원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아이디어를 낸 직원은 포상휴가라도 보내야 할 분위기다.



 새로운 복권 상품은 정말로 복음일까. 시민들은 선택권이 하나 더 늘었다며 좋아해야 할까. 그러기엔 영 입맛이 쓰다. 1999년 말 정부는 최고 당첨금이 20억원인 ‘밀레니엄 복권’이란 특별주택복권을 딱 한 번 발행했다. 20억원에 혹한 시민들이 몰리면서 금세 매진됐다. 복권은 고액일수록 잘 팔린다.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사는 게 복권이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도입된 로또복권도 인기 폭발이었다. 초기 수익금이 예상의 10배를 넘었다. 연금식 복권도 예상대로 정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고 있다. 정부에는 효자인데 서민들에겐 뭘까.



 복권은 구입자에게 환상을 심어주면서 그들의 지갑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푼돈을 꺼내 간다. 좀 심하게 말하면 복권은 정부가 운영하는 카지노다. 카지노를 드나드는 사람은 대부분 일확천금을 꿈꾼다. 하지만 그런 복을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렇게 말하면 공무원들은 ‘우리는 복권을 만들기만 할 뿐 누구에게도 살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엄청난 당첨금의 매력은 서민들의 발길을 복권판매소로 잡아끈다. 제도만 만들어 놓으면 정부 금고로 손때 묻은 돈들이 절로 굴러 들어온다.



 부자들은 어떨까. 그들은 오히려 관심이 적다. 이미 넉넉하기 때문에 그 낮은 확률에 목매지 않는다. 과학적이거나 냉정한 사람도 복권을 사지 않는다. 당첨 가능성을 계산하면 1000원도 아깝다고 보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복권은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생활이 빠듯한 사람일수록 복권을 자주 산다. 도둑질 말고 인생을 단박에 바꾸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서민들이 정부의 복권주머니를 채워주게 된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야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투자금액이 싸다. 살림살이가 빠듯해도 1000원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10장을 사도 1만원이다. 무엇보다 연금복권은 1등 당첨자를 ‘보호’하기까지 한다. 일확천금 후 패가망신하거나 가족간 불화를 야기한 기존 복권의 부작용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복권은 대다수 선진국에서도 시행된다. 역사 또한 깊다. 푼돈으로 대박에 도전하는 쏠쏠한 재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별 낙이 없는 생활에 1주일마다 추첨을 기다리는 것도 작은 행복일 수 있다. 1000원으로 이 설렘을 산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복권 판 돈으로 각종 공익사업을 한다는 것도 잘 안다. 문제는 그런 사업에 돈을 대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민이라는 점이다. 복권은 세금과 달리 강제성이 없고 구입자들의 저항감도 없다. 그래서 정부가 쉽게 생각하는 걸까.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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