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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58) 엄앵란의 선택





한복 곱게 입고 공항에 나온 아내, 감동이었다



김진규·엄앵란 주연의 영화 ‘아빠 안녕’(1968). 신성일·엄앵란 부부와 김진규는 1965년 부산에서 열린 부일상 영화제 시상식서 몰려드는 관객들을 피하느라 한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엄앵란은 심지가 곧은 여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풍파를 어떻게 견뎌 냈겠는가. 엄앵란에 대한 기대를 접고 아침 일찍 김포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터미널 입구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엄앵란이었다. 감동이 밀려왔다. 그녀는 곤경에 빠진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는 부산 제일극장에서 열린 부산일보 영화제(부일상) 시상식에 정답게 손을 잡고 나섰다. 그간 떠돌았던 온갖 추측과 소문을 단박에 잠재웠다.



 제일극장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일반인이 스타배우를 직접 볼 기회가 많지 않던 때였다. TV가 없던 시대였다. 우리는 주최 측이 마련해준 폭스바겐 비틀(일명 딱정벌레차)을 타고 극장 정문을 돌파했다. 제일극장은 라운지가 큰 편이어서 비틀 같은 조그만 차를 댈 수 있었다. 변변한 보디가드도 없었다.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는 배우는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대선배 김진규가 그랬다. 열광하는 여인들에게 남자의 중요 부위를 잡히기도 했다. 가수 최희준의 경우 나와 함께 행사 무대에 선 날은 “신형, 나 먼저 가”라면서 재빨리 도망쳤다. 내 뒤에 있으면 빠져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와 엄앵란은 별일 없이 사는 모습을 보이려고 이를 악물었다. 우리는 매스컴의 속성을 너무 잘 알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에는 우리가 잘 살길 바라기보다 헤어지길 바라는 심리가 감춰져 있다. 우리가 헤어지면 ‘그럴 줄 알았다’라며 박수치고, 고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게 자명했다. 오죽하면 나와 친분이 있는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인의 유일한 결점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걸 못 참는 것”이라고 했을까.



 별거 기간 중 우리 관계를 파헤치려는 시도가 왜 없었겠는가. 엄앵란은 집에 꽉 틀어박힌 채 일절 함구했다. 현명한 처사였다. 나도 기자라면 전화도 안 받았다. 기자들이 남자 쪽, 여자 쪽을 따로 만나면서 서로 감정적인 기사가 나오고, 결국 타의에 의해 파경에 이르는 연예인을 많이 보았다. 언론의 속성이란 그렇다. 독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면 특종이 아니다. 기자 입장에선 특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무반응이 최선이다.



 엄앵란과 떨어져 있는 동안 조그만 사건이 있었다. 나는 엄앵란 대신 내 여동생을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보스턴팝스오케스트라 지휘자 아서 피들러의 공연에 데리고 갔다. 내가 묘령의 여대생을 데려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매스컴의 누군가가 처가 쪽에 전했다. 엄앵란은 시누이를 데리고 갔으리라고 짐작하고 태연하게 대응했다. 그에 발끈해 양쪽이 하나씩 감정을 보태면 평행선이 그어질 뿐이다.



 김포비행장에 도착한 즉시, 엄앵란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두 사람은 감정이 풀렸지만, 아내와 어머니는 아니었다. 아내를 다시 집에 데려다 놓은들, 어떤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아내는 또 다시 개밥에 도토리 신세일 뿐. 엄앵란을 안방 장롱 열쇠를 쥐는 명실상부한 안주인으로 만들어주어야 했다. 그 누구에게도 언질을 주지 않았다. 내가 꺼낸 카드는 나와 어머니, 엄앵란의 삼자대면이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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