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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다름을 인정하면 나은 부분이 보인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생사를 함께할 동료 전우를 겨눠 총을 쏘다니요. 원인이 무엇이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동료들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목숨 때문이라도 그렇습니다. 내 목숨이 그렇게 하찮습니까? 속 한번 시원하자고 버릴 만큼밖에 안 되나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삶의 포기 앞에서 부모·형제들이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날까요? 극단적 방법은 어떤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될 뿐인데 말이지요. 병영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교실에서, 회사에서, 또 사교 모임에서도, 심지어 예배당(또는 불당)에서도 크고 작은 집단 따돌림과 크고 작은 보복들이 알게 모르게 일어납니다.

 나와, 우리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패거리주의가 뿌리 깊은 탓이라는 생각입니다. 들어가기 어려운 엘리트 집단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많은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어려운 관문을 뚫어야 선발될 수 있는 해병대원들이 성에 안 차는 후임병을 동료로 인정하기 싫어서 생긴 게 바로 ‘기수열외’ 아니겠습니까.

 부끄럽지만 그런 따돌림의 역사는 어제오늘 비롯된 게 아닙니다. 율곡 이이의 증언을 빌리자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려 말년에 과거가 공정하지 못해 과거에 뽑힌 사람이 모두 귀한 집 자제로 입에 젖내나는 것들이 많아 사람들이 그들을 분홍방(粉紅榜)이라 지목하고 분노하며 기강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벼슬을 얻은 깜냥 미달 인물들에게 공직이란 아무나 함부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신참례(新參禮)’가 그 출발점이었다는 거지요. 좋은 취지를 가졌다지만 통과의례라는 사형(私刑)을 후배 동료들에게 부과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점에서 처음부터 빗나갈 수 있는 여지를 배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신참례는 필연적으로 신참자나 하급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조선시대 내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요. 조선 전기의 명신 성현이 『용재총화』에서 전하는 신참례의 예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신입생 환영회나 신고식은 그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갓을 부수고, 옷을 찢으며, 흙탕물에 구르게 하는 건 예사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를 강요하는데 도가 지나칩니다. 새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연석을 베푸는 것을 ‘허참(許參)’이라고 했습니다. 함께 자리하는 걸 허락한다는 뜻이었겠지요. 자기가 술을 대접하면서도 선배들과 함께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후 50일이 지나 접대를 하는 걸 ‘면신(免新)’이라 했지요. 일종의 ‘면수습’인데 이때에야 비로소 선배들 옆에 앉을 수 있었지요. 허참과 면신 사이에도 수없이 연회를 베풀어야 했는데 그것을 ‘중일연(中日宴)’이라 했답니다. 접대할 때마다 선배들에게 기생을 붙여주고 최고참에게는 양 옆에 기생을 앉혀야 했다니 어지간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집안 기둥뿌리가 남아나지 않았겠지요.

 이런 폐단을 없애고자 『경국대전』에 ‘신참을 괴롭히는 자는 곤장 60대에 처한다’는 법규를 만들어 넣었지만 이미 뿌리내린 관습을 뽑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신참례의 변종 바이러스를 오늘날 신고식이나 기수열외에서 발견하는 겁니다.

 선배들의 노력이 없으면 이 같은 백해무익 폐해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모자람은 다름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모자라더라도 다른 편에서는 넘치는 게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나보다 나은 부분이 보일 겁니다. 신참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나은 부분은 키워주면 얼마나 막강한 조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선배들의 할 일입니다.

 역사에서 원인을 보았으니 역사에서 해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원래 선배란 말은 고구려의 선배 제도에서 나온 겁니다. 단재 신채호는 이렇게 전합니다. “태조왕 때부터 사람을 모아 활도 쏘고 택견도 하며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일컫고, (…) 선배가 된 사람은 일신을 사회와 국가에 바쳐 모든 곤란과 괴로움을 사양치 아니한다.”

 선배 제도는 고구려 강성의 기초였습니다. 선배들의 진취적 기상과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선배들이 전장에서 가장 용감했다. 당시 고구려의 지위는 거의 골품으로 얻어 미천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직 선배의 단체는 귀천이 없어 학문과 기술로 지위를 획득했으므로 이 가운데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 조선의 선배들과 고구려의 선배들 중 어떤 선배가 되시렵니까?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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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