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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1. 청산별곡 (10)

닻줄을 감자, 거대한 범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른 보폭으로 예순 걸음이나 되는 커다란 배였다. 갑판 위에서 말을 달려도 될 정도였다. 갑판 아래 두 길 높이의 선실에는 칸칸이 인삼과 지필묵, 불경, 유교 경전 같은 교역 물품들이 차곡차곡 쟁여져 있었다. 물품 종류와 수량, 받는 이의 이름을 쓴 길고 납작한 목간을 꽂았다. 선원들이 먹을 식량과 물동이들도 가득했다. 마구간도 넉넉해서 수십 필의 말을 매어둘 수가 있었다.

이 상선의 우두머리는 왜인이었다. 앞머리를 밀고 상투를 높이 튼 머리 모양이 눈에 두드러진다. 사카야키(月代)는 가마쿠라시대 왜인들 고유의 상투였다. 상선의 우두머리 강수(綱首)가 왜인이라고 해도 십수 명으로 구성된 상인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고려인과 유구국인, 중국인, 섬라곡국(태국)인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멈추시오! 잠깐 멈추시오!”

선착장으로 파발마 한 기가 짓쳐 왔다. 등 뒤로 자황색 깃발 표지가 나부꼈다. 궁궐에서 나온 파발마였다. 계엄하의 선착장에 깔려 있던 군교와 기찰이 배를 세웠다. 뒤로 노를 저어 다시 접안했다.

“무슨 일이오이까?”

고물 위에서 상선의 우두머리가 바투 다가온 관리에게 물었다.

“집정 나리께서 정안 수령에게 보내는 예물상자요. 대장도감 인보 스님 어딨소?”

인보에게 붉은 비단보자기로 싼 상자가 건네졌다. 간찰로 보이는 종이뭉치와 함께였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상선은 썰물을 타고 제법 빠르게 염하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뱃머리 난간을 붙잡고 서서 해협 양안의 풍광을 조망했다. 초여름 오후의 따가운 볕을 삿갓으로 가린 채였다.

 “아까 그자는 액정국(掖庭局) 정9품 전전승지가 아니더냐. 김….”

나는 낯이 익은 그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맞수. 김준이라는 자요.”

인보가 귀찮다는 투로 이죽거린다.

“천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지엄하신 황제의 명을 전달하는 일을 맡았으니 사람은 역시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가 보다. 줄을 잘 서야 한단 말이지.”

나는 최충헌의 노비 김윤성의 아들이 발바리처럼 빨빨거리다가 최이의 눈에 띄어 벼락출세한 걸 꼬집었다. 그런 예는 이 무인정권 치하에서 셀 수 없이 많았다. 관직에 오르는 기준이 공부의 깊이와 인격에 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에 대한 충성도만 높으면 그만이었다. 황제를 보필하는 승지도 최씨 무리가 뽑았다.

“지밀 승정도 은근히 사람 차별하는 거 아시죠?”

인보의 딴죽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렇다고 직수굿이 인정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차별이 아니라 너무 어처구니없는 관직 나눠먹기를 지적하는 거다.”

“전생에 닦은 게 있어서 벼락출세한 건가 보죠.”

“그렇게 치면 무인 집권세력의 전횡도, 몽골 오랑캐의 고려 침공과 약탈도 전생에 닦은 복이 있어서 누리는 정당한 행위가 되겠구나.”

인보는 더 대꾸하지 못했다. 어디 인보뿐이겠는가. 누구라도 대꾸하기가 곤란하다. 결과론으로 인연법을 해석하고 전생록을 들먹이면 모든 현상을 인정하는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불교의 세계관이 지니는 한계다. 세상에는 인과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부조리가 얼마든지 많다. 가령 여름날 느닷없이 벼락에 맞아서 죽는 경우는 인연법이나 업보와는 전혀 무관하다. 착한 이나 악한 이나 천둥 치는 벌판에 서 있다가는 벼락 맞기 십상이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서 있는 장소의 문제다. 이런 때는 공자나 석가보다 노자가 옳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천도는 어질지 않다고 간파한 노자가 속 시원하다.

때마침 배는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은 용머리 돈대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염하에서 가장 험한 뱃길이었다. 해마다 여러 차례 배가 난파되는 곳이었다. 선장이기도 한 강수가 뱃머리에서 진두지휘했다. 돛의 방향을 서쪽으로 틀게 했다가 원래대로 되돌려 좁은 여울목을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경험 많고 노련한 선장다웠다.

“전생록은 그렇더라도 무인정권 세력을 매도만 하는 건 옳지 못해요.”

인보가 정면으로 대거리하고 나왔다. 나는 창자가 뜨개질하는 것처럼 꼬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무인세력을 불러들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거요. 문신들이 군비를 줄이고 무인들을 나지리 보며 차별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 나라와 백성을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고 말았지요.”

이번에는 인보가 정곡을 찔렀다.

“그럼 무인정권하에서 속수무책으로 외침을 당하고 있는 지금은 뭐냐?”

나는 적들과 싸우지 않고 강화도로 숨어들어온 무인들이 뇌꼴스럽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니까요. 하지만 무능한 황제와 문인들을 겁줄 만한 발톱은 남아 있는 거죠.”

인보는 짐 보따리와 간찰 뭉치를 들고 선실로 내려가 버렸다. 머릿속이 먹먹했다. 그의 말이 옳았으므로 옆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해도 나는 반박하지 않았을 거였다. 미련스러운 인보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그간 나는 내 입장만 고집해 왔다. 처지와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수기 스승만 해도 나와 의견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간 내가 최씨 무인정권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길 때마다 스승은 침묵했다. 속 시원히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스승이 나는 야속했다. 지난봄, 격구장을 벗어나자마자 토악질을 하는 내게 스승은 말했었다. 가증스러운 건 최씨 무인세력들이 아니라 우리들일는지도 모른다고. 저들이 세운 절집과 대장도감에서 배불리 먹고 두 다리 쭉 펴고서 지내온 우리인지도 모른다고. 역사는 권력을 잡고 누리는 자들이 자기 취향대로 쓰는 것임을 몰라서 그러느냐고. 그러면서 최이 집정도 따지고 보면 불행한 중생이라는 논리를 폈다.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다. 집정 최이의 입장에서 이 정국을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최이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가 탄 배는 드디어 염하를 빠져나가 질펀한 바다로 나갔다. 나는 고물로 자리를 옮겼다. 배는 하나의 작은 섬이었다. 더 큰 섬 강화도가 멀어져 간다. 강화도는 봉황의 알이다. 오른편 육지는 철퍼덕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는 봉황이다. 이 마당에 알을 품지 않는 봉황을 누가 탓할 것인가. 오랫동안 가혹한 조세와 부역, 수탈이 계속되었다. 버림받은 국토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가는 생민들은 분노했고 민란이 들끓었다. 전쟁은 적들이 시작했지만 그 전쟁을 연장하고 바닥까지 참상을 보여준 건 봉황의 알 속에 든 노른자, 강화도 권력층이었다.
 
흉년 들어 거의 죽게 된 백성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았는데

몸에 남은 살이 얼마나 된다고

남김없이 죄다 긁어내려 하는가

네 보는가 물 마시는 큰 쥐도

그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데

묻노니 너는 얼마나 입이 많아서

백성들의 살을 겁탈해 먹는 건가

“멀리까지 가시는데 뱃멀미는 안 하십니까? 전 가네야마(金山)라고 합니다.”

대문장가 이규보 상국의 절창(絶唱)을 속으로 외우는데 강수가 와서 말을 건다. 장사꾼다운 이름이었다. 이녁은 내 신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상선에 타고 있는 수십 명의 인적사항을 그는 고스란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 배에서 그는 제왕과도 같은 지위였다.

“지밀입니다. 바람 잔잔해서 괜찮군요.”

아직 태풍이 불어닥치는 계절이 아니었다. 배는 연안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야간 항해가 이어질 겁니다.”

“그믐께라서 달빛도 없는데요?”

“별을 보고 가는 겁니다.”

별. 밤하늘 검푸른 궁륭에 돋아난 성좌가 길라잡이라니. 가슴이 떨렸다. 지도와 나침반이 아니라 별을 보고 가는 밤의 항해는 내 인생이 처음 맞이하는 새뜻한 일이었다. 첫 경험은 언제나 달뜨게 만든다.

“항해사들은 도인과도 같군요.”

“도는 진리를 담은 책 속에 있는걸요. 문명국 고려에는 정선된 문헌이 많지요. 우리 대마도 사람들은 고려가 펴낸 불교경전을 소장하는 게 소원이랍니다. 경전 한 권 한 권을 보물지도처럼 제본한 고려대장경은 단연코 세상의 으뜸이지요. 게다가 고려자기와 금은세공품까지 지닐 수 있다면 여한 없는 삶이고요.”

맞다. 고려인들이 만든 두루마리 경전들은 미려하다. 경전에 담긴 말씀들도 훌륭하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참혹한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고 멀고먼 극락세계를 읊조리는 그 말씀들은 왠지 공허하다. 차라리 하늘의 별이 더 선명하고 가까워 보인다.

“최이 집정이 운하를 뚫으려 했던 곳이로군요.”

내가 김포 굴포 운하 공사를 하다 만 지점을 가리켰다.

“탁견이 있는 지도자입니다. 남경(한양)까지 안전한 뱃길도 열고 시간도 단축하고 일석이조죠. 중단한 건 유감입니다.”

최이를 높게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또 한 사람 있었다. 전란 중에 생뚱맞게 운하를 판다고 인주(인천)와 김포, 남경 사람들을 혹사시켜서 크게 원성을 산 바 있었다. 백성의 피와 땀은 오로지 자신의 고집을 실현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다행히 도중에 암반지대가 나타나자 포기하고 슬그머니 덮어버렸다.

가네야마 강수는 그간 목숨을 걸고 드나들었던 험난한 뱃길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조국 대마도, 일본, 유구국, 섬라곡국, 점성, 마팔국(인도) 이야기는 모험과 환상의 세계였다. 그 먼 나라들은 고사하고 제주도도 가보지 못한 나는 방안퉁소였다. 아니, 남해도 처음 가는 길이었다.

강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석양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갑판에서는 저녁을 짓느라 부산을 떨었다. 나무틀에 철제 삼발이 솥과 토제 시루가 걸렸다. 나무 바닥에는 돌판이 깔렸다. 불을 지필 때 화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갑판에서 내려와 젓갈냄새 같은 게 진동하는 선실 우리 방으로 들어섰다. 인보는 절첩본 잡기장에 세필로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최이 집정이 인보같이 한참 아랫것한테 편지를 낸 건 의외였다. 얼마 전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처지가 아니던가.

내가 고래 배 속같이 편안한 선실에서 눈을 뜬 건 새벽녘이었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고함소리도 요란했다.

“동쪽으로 돛을 틀어라! 우현으로 노를 저어라!”

가네야마 강수의 목소리였다.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인보는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갑판으로 뛰어올라갔다. 별빛이 총총한 어스름 속에 어렴풋이 먼동이 트는데 마파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강수와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어스름 속에 나타난 검은 물체를 주시했다. 검은 물체는 좌현 너머로 비켜서고 있었다.

“하마터면 해벽에 부딪칠 뻔했구나. 그만 내려가 눈을 붙여라.”

이마의 땀을 훔친 강수가 밤새 배를 몬 항해사에게 일렀다. 나는 왼편 뒤로 밀려가는 검은 물체가 바다로 뻗쳐 나온 바위곶이라는 걸 알아챘다.

“밤새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잦겠군요.”

“가끔씩요. 휴! 십년감수했소이다. 태안 관장항(冠丈項) 부근이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암초와 늘 싸워야 한다오.”

“왜 이런 곳에 등불을 켜두지 않는 거죠?”

“등불이라뇨?”

“늘 다니는 상선들이 힘을 모아서 저런 바위곶 위에 오두막을 세우고 밤새 불을 켜두게 하면 되잖아요.”

“그거 썩 좋은 발상이긴 한데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할 수 있어요! 대진국 일대에는 돌로 높이 단을 쌓고 장작불을 피우죠. 수십 리 밖에서도 보이게요. 그 덕에 밤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답니다. 그걸 등대라고 해요.”

잠자리로 돌아가던 인도 출신 항해사가 일본어로 말했다. 가네야마 강수가 내게 통역을 해줬다.

“누가 세우고 관리한단 말이냐?”

“국가가 하는 거죠. 해양국가라면 그 정도 시설은 갖춰야 해요. 옛 시절 고려라면 능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꿈같은 얘기네요. 대진국 사람들은 이미 천 년 전에 등대를 세웠다고 합니다.”

“대사, 지밀 대사님의 발상이 놀랍군요. 전 여태 왜 그런 생각을 못 한 거죠?”

나는 태조 왕건을 떠올렸다. 해상왕국을 꿈꿨던 그가 지금껏 살아있었다면 등대라는 걸 세웠을 거였다. 내가 생각하는 걸 그처럼 걸출한 영웅이 왜 생각하지 못했겠는가. 세상은 꿈꾸는 자와 그것을 실행하는 자들이 만들어간다. 해상왕국 고려가 다시 융창하려면 바다에 등대부터 세우고 밤새워 불을 밝혀야 한다. 그러면 고려 13개 조창(漕倉)이 있는 전라도 경상도 일원의 항구들이 눈부시게 발전하리라. 세금을 거둬들이는 조운선의 통행이 활발하면 상선들의 출입도 많아진다. 이익이 생기면 천리만리도 마다하지 않는 게 장사꾼들이다.

이후로 가네야마 강수는 내 이름에 꼬박꼬박 다이시(大師)라는 존칭을 붙였다. 낮에 전라도 보안(保安:부안)에 있는 조창인 안흥창을 지났다. 스승이 백제 때의 이름 흔량매현으로 부르는 문제의 지역이었다. 질펀한 갯벌 너머로 보이는 저 험준한 산속 어딘가에 김승이라는 교활한 자가 살고 있을 터였다.

소설가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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