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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세상의 길 6개, 찬찬히 따라가며 만난 삶과 문명




인도 잠무카슈미르주의 동부 라다크. 이곳의 십대들은 기숙학교로 가기위해 외딴 계곡을 떠나 차다르(‘얼음 담요’라는 뜻)라 알려진 얼어붙은 강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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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코노버 지음
박혜원 옮김, 21세기북스
520쪽, 1만9800원


아름다운 책이다. 아, 물론 장정 등 편집이나 문장이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다. 책은 부제가 ‘여섯 개의 도로가 말하는 길의 사회학’이고, 출판사는 정치·사회 분야로 분류한 데서 짐작이 가듯 주제는 제법 묵직하다. 그런데 목청을 높여 문제의식 혹은 역사의식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낮은 목소리로 가까이서 찬찬히 길을 따라가며 의미와 풍경을 전해준다. 사치스러운 감상이나 풍성한 교양을 과시하려 애쓰지도 않아 서술 대상인 길과 주변 풍경, 그리고 그 길을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그윽한 시선을 따라가노라면 삶과 문명에 대해 절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은이는 미국의 저명한 논픽션 작가. 싱싱교도소 교도관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이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솜씨가 뛰어나다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길에 주목했다. 길은 인간 세계의 ‘혈액순환계’이자 문명의 집약이고 삶의 축도라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이 땅에 가져온 경제·사회·환경의 변화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다. 그래서 그는 여섯 코스의 길을 답사하며 보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페루의 아마존강 유역, 인도 오지 히말라야의 얼음 길, 아프리카 케냐의 ‘에이즈 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잇는 가자 서안지구의 검문소 길, 베이징과 후베이성을 잇는 중국 고속도로, 나이지리아 수도 라고스가 그곳이다. 각각 개발 대 환경, 고립 대 진보, 군사적 대치, 질병의 전파, 사회적 변화, 도시의 미래란 테마가 있다.

예를 들어 뉴욕 파크애비뉴에서 페루 아마존강 유역까지를 다룬 1장 ‘욕망의 길’을 보자. 지은이는 호화 아파트의 내장재로 쓰이는 마호가니 목재의 수입 경로를 역추적했다. 현지인들과 함께 탱크로리 위에 앉아 가파른 산길을 내달리고 고산병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뉴욕 상류층의 호사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마호가니 나무가 아마존강 유역의 미개발 밀림에서 어떻게 불법 벌목되는지, 그 결과 문명과 교류가 없던 ‘미접촉 원시부족’이 생존위기에 처하게 됐는지 차분하게 보여준다.

 “겹겹이 주름진 산비탈이 우리 밑으로 이어지다 돌연 광활하고 매끈한 아마존강 유역의 녹색 평원으로 펼쳐졌고, 평평하게 뻗은 평원은 2000마일을 달려 바다까지 닿았다. 산비탈이 끝나는 곳에는 도로가 작은 갈색 띠처럼 이어졌다.” 꼬불꼬불한 페루 고지 산길을 오르니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묘사한 대목이다. 낭만적인가.

 그럼 “페루, 우리는 할 수 있어” 또는 “미국인처럼 살아보자”란 구호가 적힌 길가 광고판은 어떨까. 아니면 “개발이 덜 된 나라에서는 뭐라도 세계가 간절히 원하는 걸 생산해야 해요. 지금 세계가 간절히 원하는 건 마호가니고요”라는 마호가니 제재업자의 이야기는 어떤가.

 지은이는 이처럼 아무런 도덕적 평가를 내리지 않은 채 스케치하듯 길을 따라간다. 화물차 기사와 매춘부가 어우러져 에이즈 확산 경로가 되는 케냐의 길,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을 구타하고 모욕을 주는 이스라엘 검문소, 경찰이 숨은 채 교통위반을 기다리는 라고스의 시내 등을 보여준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읽는 이에게 맡긴 채.

 책을 읽은 날 밤 인도 라다크의 10대들이 기숙학교에 가기 위해 걷는다는 얼어붙은 강 위를 걷는 꿈을 꾸었다. 가도 가도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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