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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불황기 르네상스 때 미술이 활짝 핀 이유는





상인과 미술
양정무 지음, 사회평론
361쪽, 2만2000원


위대한 천재들과 이들을 알아본 안목있는 후원자들의 시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통념이다. 동양과의 중개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이탈리아 상인들이 미술가들을 적극 후원해 걸작을 탄생시켰다는 얘기 말이다.

그러나 ‘서양미술의 갑작스러운 고급화에 관하여’라는 부제의 이 책은 “정말 그랬을까” 묻는다. 저자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중세 유럽 경제사 전문가인 로버트 로페즈(1910~1986)의 ‘르네상스 장기불황론’을 인용, 유럽 경제가 실은 르네상스 시기였던 1330년대부터 200여년간 대불황에 빠져 있었음을 지적한다. 당시 유럽에는 금융위기, 흑사병에 따른 생산력 감소, 부동산 폭락 등 악재가 겹쳤다. 번영이 초토화된 이 시기에도 사치품 시장만큼은 활황을 누리는데 저자는 이를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르네상스는 귀족 사회였으나 사회 환경의 급변으로 지배 세력의 흥망 주기가 빨라졌다. 지배층에 편입한 신흥 세력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정당화할 수단은 바로 ‘문화 소비’였다. 돈 있는 사람들이 엘리트 집단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열쇠가 문화였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당대 상인들의 서신 및 장부, 화가와 구매자 간의 계약서, 작품의 X-선 사진 및 안료의 현미경 단층 촬영 데이터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이 시대를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 후원자로 꼽히는 로렌초 메디치도 사실은 자신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손해를 입게 된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데 미술을 이용한 기업가였다.

저자는 “미술품 거래라는 새 사업 영역에 뛰어든 상인에 의해 그림들이 점점 더 고급스럽고 화려해졌으며, 자본주의 시장의 마케팅 경쟁처럼 미술이 생산되고 소비됐다”며 “르네상스 미술을 서구 상업문화의 역사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르네상스 미술을 고대 그리스·로마 인문주의의 고상한 재발견으로만 본다면 반은 놓치는 것이다. ‘이미지의 성스러움’과 ‘돈이라는 세속성’이 미술 속에서 모순된 동거를 시작한 시기인 것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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