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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세월 거슬러 보다, 선인들이 겪은 신기한 바깥세상







조선시대 제주도 관리였던 최부(1454~1504)는 제주도에서 출발한 뒤 표류해 당시 중국 강남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사진은 15세기 무렵의 중국의 대운하 시설을 보여주는 중국화. 최부는 대운하의 전구간을 6개월간 거슬러 올라갔다. [글항아리 제공]













조선 사람의 세계 여행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서재길 책임기획

글항아리

432쪽, 2만3800원




여행이 ‘설렘’이라는 감정과 연결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도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다. 예전에 나라 밖 구경을 떠난다는 것은 자의보다 타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공포와 절망의 감정에 더 가까웠다. 통신사의 일원으로 보내지거나, 조공무역의 대상으로 팔려가거나, 길을 잃고 표류하다가 ‘본의 아니게’ 외국 땅에 이르게 되거나.



 『조선 사람의 세계 여행』은 고려 말,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 시기까지 600년간 이뤄진 우리 조상들의 해외여행을 소개한다. 다양한 연유로 바깥세상을 접한 조선인 이야기 12꼭지다. 파란만장했던 우리 역사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느껴진다.



 조선 성종 때의 관료 최부의 일화는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니라 풍랑에 밀려 강남 간 경우다. 1488년 제주도에서 전라도로 아버지 상을 치르기 위해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는 바람에 중국 강남 여행을 제대로 했다. 15일간 표류 끝에 중국 땅에 상륙한 그는 반년 가까이 그곳에 머물며 당시 풍요를 누리던 강남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 책이 『표해록』이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여행담에 지나치게 열을 올린 탓일까. 최부는 “중국에서의 견문을 이야기할 때 (부친상에 대해) 조금도 애통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비방에 시달리고 관직을 잃었다.



 모시와 말, 인삼을 팔러 중국에 갔던 고려 상인의 여행기도 재미있다. 『노걸대(老乞大)』는 조선시대 가장 널리 사용된 중국어 회화 학습서인데, 이 책에서는 그 생생한 내용을 고려 상인의 중국 여행기로 새롭게 조명했다. 숙박비나 물건 값을 깎기 위해 옥신각신하고 위조화폐를 받지 않을까 걱정돼 중개인에게 보증을 요구하는 대목 등이 오늘날 풍경과 다르지 않다.



 조선후기 탁월한 유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홍대용의 북경여행(1765년)도 주목할 만하다. 낯선 세상을 탐험하며 새로운 문물과 처음 맞닥뜨린 청년의 학구열이 그나마 요즘의 ‘여행’ 개념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2개월간 중국에 머물며 중국인 친구를 사귀고, 세 차례나 천주당에 찾아가 서양화, 파이프오르간, 자명종 등을 구경하며 받았을 홍대용의 문화적 충격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해외 근대문물을 접하면서 한편으론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괴감을 맛보는 모습이 뚜렷하다. 여운형의 모스크바 여행, 이순탁 연희전문교수의 세계여행, 조선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의 여행 등이 그런 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 책은 여느 픽션 못잖게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바깥 세상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옛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된다. 우리 선인들이 각종 견문록 형태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와 도저히 만날 수 없었을 이야기들이다.



 서울대 규장각 측은 여행을 주제로 한 『세계 사람의 조선여행』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 등 두 권을 더 낸다고 한다. 벌써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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