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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첼로 활, 소프라노 … 엉뚱한 셋의 원초적 소리




가야금 명인 황병기(왼쪽)씨는 1975년 급진적인 작품 ‘미궁’을 내놔 화제가 됐다. 황씨는 13일 소프라노 윤인숙(오른쪽)씨와 함께 이 작품을 공연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일 오후 서울 북아현동, 국악 명인 황병기(75)씨의 자택. 황씨가 첼로 활과 가야금을 무릎 위에 놨다. 곁에는 소프라노 윤인숙(64)씨가 섰다. 악보 아닌 악보를 들고 있었다. 종이엔 지시어와 간단한 음 높이가 적혀 있다.

 이윽고 황씨가 활을 가야금에 떨어뜨렸다. 그 반동으로 음의 파도가 일었다. 윤씨가 가사 없는 구음(口音)을 시작했다. 소리는 이내 웃음이 됐다. 웃고 또 웃으니 광기나 다름 없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짧은 순간에 웃음은 울음이 됐다. 통곡 소리가 울렸다.

 작품 ‘미궁’이다. 1975년 황씨가 만들어 무용가 홍신자씨를 소프라노 삼아 초연했던 작품이다. 가야금으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집합시킨 이 작품은 당시 대단한 화제가 됐다. 서울 명동 국립극장에선 관객 몇 명이 공연 도중 자리를 떴다.

 황씨와 윤씨가 13일 ‘미궁’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황씨가 직접 이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꼭 7년 만이다. “내 작품이지만 참 아이러니한 곡”이라고 했다.

 “듣는 사람들이 참 무서워 하고, 음반도 많이 사지 않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특히 75년 초연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가 2000년 이후 인터넷을 통해 ‘미궁’을 듣고 신기해한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미궁’은 실제로 공포스럽다. 극단적인 웃음·울음은 얌전한 편에 속한다. 소프라노는 별안간 신음하고, 공연 당일 발간된 신문을 낭독한다. 또 절규하고 고함을 친다. 이와 이 사이로 광폭한 파도 소리도 낸다. 가야금은 첼로 활에 긁히고 튕겨진다.

 황씨는 “익숙한 소리가 아니어서 무서운 거다. 여기서 나는 소리는 문화 이전의 소리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내는 원초적 소리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본능적인 소리를 무서워한다. 그 두려운 영역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서양 음악을 공부한 윤씨는 “웬만한 오페라에서 아리아 몇 곡 부르는 것보다 ‘미궁’ 한 번 하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그는 90년대에 처음 황씨와 함께 이 작품을 공연했다.

 “인생 흐름이 모두 담긴 작품이어서 그런 것 같다. 영혼의 탄생에서부터 피안으로 가는 장면까지 담겨있는데 그 하나하나가 무겁고 의미심장하다. 한번은 우는 장면에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멈추지 못한 적도 있었다.”

 ‘미궁’의 흐름엔 중요한 기둥만 세워져 있다. 소프라노는 그 사이를 즉흥적으로 채울 의무가 있다. 윤씨는 “사실 이런 방법은 국악의 방식인데, 서양 성악을 공부했던 나는 황병기 선생을 통해 국악의 방식을 통째로 배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21세기 청중에게도 전위적인 ‘미궁’은 한국 음악의 특성 또한 지니고 있다. 황씨는 “‘미궁’이야말로 청중이 없으면 완성되지 못하는 음악이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낼 때마다 객석은 즉각 반응하고, 이게 다시 우리에게 전달돼 공연에 영향을 준다. 이게 ‘미궁’의 참맛”이라고 설명했다.

 원초적인 소리를 거친 ‘미궁’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주문(呪文)으로 마무리된다. 황씨는 13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에서 ‘미궁’과 함께 대표적 창작곡인 ‘침향무’연주·해설에 직접 나선다. ‘밤의 소리’ ‘소엽산방’ 등은 동료·제자가 출연해 연주한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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