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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거울에 비친 태국 정치




정용환
홍콩특파원


태국 총선이 치러지기 하루 전, 장대비가 내렸던 지난 2일 밤 일이다. 택시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숙소가 있었다. 승차거부를 당하다 간신히 잡아탔는데 이번에도 기사는 “피곤해서 집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없다”며 바꿔 탈 것을 나름대로 정중히 요구했다. 지난해부터 네 차례 방콕으로 출장을 왔지만 거리에 택시의 ‘씨가 마르고’ 승차거부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학생들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탁신당을 찍기 위해 택시기사들이 온종일 결의대회를 열었고 이미 상당수 기사들은 투표하러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군부 쿠데타로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지휘하는 푸어타이당은 이번 총선에서 택시기사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겠다고 맞춤형 공약을 내놨다. 기름값 등 차량 유지 비용을 한 달 미뤄 결제할 수만 있어도 하루 500바트(약 1만7000원) 버는 태국의 택시기사들에겐 대단한 복지이기 때문이다.

 농어민과 도시 서민의 표심을 붙잡기 위해 푸어타이당이나 집권 민주당이나 포퓰리즘 소리를 듣는 선심성 공약을 쏟아냈다. 태국 1년 예산의 각각 4배, 2배에 달하는 재정이 필요한 공약이었다. 나라 살림 중단하고 공약 이행에만 돈을 퍼부어도 이 정도라는 말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정을 덮어놓고 서민들이 단지 포퓰리즘에 열광해 탁신당에 몰표를 준 것 같지는 않았다. 푸어타이당사에서 만난 지지자들은 군부 등 반탁신 기득권층이 농단한 자신들의 표를 되찾기 위해 투표했다고 입을 모았다.

 2005년 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탁신이 총리에 연임됐다. 자신감이 넘쳤던 탁신은 빈곤선에서 허덕이는 태국의 다수 서민들의 표를 믿고 도시 중산층을 비롯한 전통적 기득권층을 적대시했다. 재정 파탄을 경고하는 반대파의 항의를 묵살하고 무상의료·농가부채 탕감 등 포퓰리즘 정책을 강행했다. 이후 태국 정국은 쿠데타-탁신파의 재기-반탁신 노란셔츠의 공항·정부청사 점거-야합에 의한 민주당 집권-친탁신 레드셔츠의 방콕 도심 점거 시위로 이어졌다. 민심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길바닥 떼쓰기로 정당한 선거 결과를 뒤집고 군부가 정치를 짓밟아도 탁신을 징벌한다는 이유로 합리화됐다. 관광도시 방콕 상공이 폐타이어 연기로 시커멓게 뒤덮였지만 억울한 탁신을 위해 하는 일이니 명분 있다고 정당화했다.

 이제 태국은 2006년 쿠데타 전 상황으로 돌아왔다. 친탁신이나 반탁신이나 신중해졌다. 반탁신 진영은 몰표에 담긴 민의를 존중했고 친탁신 진영은 우선 경제부터 살려놓겠다며 공약 이행에 속도조절을 강조한다. 양쪽 다 포퓰리즘이 뿌린 해악의 대가가 얼마나 크나큰 것인지 처절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타협안을 끌어내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기대 촛불을 드는 행위의 무서움을 태국이 온몸으로 보여줬다. 길을 막고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우리의 정치인들은 초에 불을 붙이기에 앞서 잠시라도 태국이 지난 5년간 학습한 포퓰리즘 정치의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 <태국 방콕에서>

정용환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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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