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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뮤지컬은 나의 고향이다 … 안재욱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한창 주가를 높일 때였다. 이듬해 배우 안재욱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도 출연했다. 2주 남짓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은 전회 매진이었다. 역시 안재욱이었다.



성대 결절 뒤 등산에 미쳤고 그러다 다시 뮤지컬에 빠졌다
난 멀티 플레이를 못 한다, 3년째 무대에만 서고 있는 이유다
처음부터 꿈이었는데, 잠깐 ‘외도’하는 걸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승부욕이 꿈틀댄다, 이 바닥서 인정받고 말 거다

문제는 그 후였다. 대박이 터지자 뮤지컬 제작자는 허겁지겁 지방 공연을 잡았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안재욱은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너 빠지면 공연 못 올려” “좀 떴다고 너무 뻣뻣한 거 아냐” 등 제작자, 주변 동료의 애원과 협박은 상상 초월이었다. 결국 스케줄을 펑크 내고 딱 한 차례 지방 공연에 합류했다. 그 공연이 끝나는 날, 극장에서 옷을 내팽개치며 안재욱은 제작자에게 호언장담했다. “약속도 없고 막무가내식으로 하는 뮤지컬, 다신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게 인연은 끊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08년 출연한 드라마의 시청률이 곤두박질치고, 인기가 부질 없음을 절감하며, 자칫 슬럼프에 빠질 듯한 순간 그를 다시 곧추 세워준 건 무대였다. “내가 왜 배우가 되려 했는지, 초심을 다지게 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화·드라마를 떠나 오롯이 뮤지컬에만 3년째 올인하고 있다. 잊고 지내던 연기에 대한 의욕이, 관객과 직접 만난다는 긴장감이, 동료에 뒤지지 않겠다는 승부욕이 그를 다시 가슴 벅차게 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안재욱의 화려한 부활이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사진작가 Y.Zin













안재욱(40)은 다음 달 14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잭 더 리퍼’에 출연 중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진행됐다. “제작팀 단합대회에 가서 족구를 하다 다리가 삐끗했다. 마흔 넘으면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밖에선 비가 꽤 내렸다. 분위기가 조금 처질 수도 있건만 안재욱은 특유의 입담으로 진지함과 쾌활함을 넘나들었다.



-‘잭 더 리퍼’를 3년째 해오고 있다.



“2009년 11월 ‘살인마 잭’이라는 이름으로 초연할 때 참여했고, 이후 ‘잭 더 리퍼’로 제목을 바꿔 지난해 초 성남아트센터 공연, 여름 앙코르 공연, 그리고 이번까지 네 번 모두 공연하게 됐다. 2009년 초연 때 무척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그 느낌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안 하려고 해도 ‘지금껏 혼자 실컷 해 먹고선 이제 와서 쏙 빠져나가면 어떡해’라는 식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인가.



“아무리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해도 초연에 참여해 캐릭터를 구축하다 보면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가진 순수한 사랑과 악마성이라는 이중성은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하다. 돌이켜보면 드라마 할 때도 늘 그랬다. 밝으면서도 어딘가 아픔이 있고, 무척 냉정하지만 누군가에는 한없이 따뜻한, 단면적이지 않고 다층적인 내면을 가진 인물을 연기해왔다. 양면적인 감정의 기복을 따라갈 때 내 스스로도 질리지 않고 인물에 빠져들어갈 수 있다.”



-로맨틱한 캐릭터를 자주 연기해 왔는데, ‘다니엘’은 무척 어둡다.



“뮤지컬에서도 다니엘은 초반엔 순수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게 안재욱이란 인물의 본래 이미지랑 자연스럽게 중첩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설정이 있어야 극 중반으로 가면서 점차 악의 화신처럼 극단적인 변신을 해도, 관객이 받아들일 때 거북하지 않을 듯싶다. 나도 이제 마흔인데 언제까지 말캉말캉한 연기만 하겠는가. 나 말고 그런 배역 할 후배들은 많다.”



-1998년 ‘아가씨와 건달들’ 이후 뮤지컬은 정확히 11년 만이었다.



“제의는 여러 번 있었다. 근데 난 몇 가지를 병행하지 못한다. 뮤지컬 연습하는 와중에 잠시 짬을 내 드라마 찍는 식의 멀티 플레이가 안 된다는 얘기다. 하나 할 때 그거 하나만 하기도 벅차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몇 개월 찍고 잠시 휴식한 뒤 음반 녹음하고, 조금 있다 신보 기념 콘서트하고…. 그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뮤지컬은 한번 하게 되면 연습에서 공연 마무리까지 적어도 6개월은 온전히 다 투자를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2009년 ‘잭 더 리퍼’가 절묘하게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드라마에 대한 회의감도 들 때고….”











-회의감? 어떤 걸 말하나.



“또래들보다 드라마를 조금 많이 찍다 보니 책임감이랄까 뭐 그런 게 있었다. 언제까지 ‘쪽대본’에 의해서, 이토록 힘들게 드라마를 찍어야 하나. 제작 방식의 선진화 같은 걸 바랐다. 그런 결과물이 2008년 ‘사랑해’라는 드라마였다. 16부작을 100% 사전 제작으로 찍었다. 그런데 막상 찍다 보니 일이 꼬여가는 게 확 느껴졌다. 6부쯤 찍는데 이미 힘이 쭉 빠져 있었다. 예상대로 시청률은 6%대였다.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10% 미만의 드라마는 충격적이었다. 더 힘들었던 건, 그렇게 나쁠 것이라는 건 방송 나가기 전에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던 거다. 이미 답안지를 밀려 써 놓고선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그래서 드라마를 멀리 했나.



“패배의식이랄까. ‘사전 제작은 얼어죽을. 우리가 뭐 그렇지. 시청자 반응 보고 그때그때 후다닥 고쳐가야지’라는 심정이었다. 시청자들에게도 조금 잊혀진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성대 결절까지 왔다. 이듬해 일본 콘서트를 앞두고 성대에 물혹이 생겼다는 거다. 그건 공포였다. 이러다 노래를 못 부르는 게 아닌가, 연기를 아예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4개월간 술·담배를 끊고 등산만 다녔다. 그렇게 나를 정비하는 와중에 조우하게 된 게 뮤지컬이었다.”



-10여 년 만에 하는 뮤지컬이 두렵지 않았나.



“성대 결절을 싹 낳게 해줄 만큼 활력을 주었다. 솔직히 충격도 컸다. 뮤지컬 쪽에서의 내 인지도가 너무 낮았다. 내 출발은 뮤지컬이었는데, 그걸 전공했는데,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관객은 내가 뮤지컬 하는 걸 그냥 연예인이 잠깐 뮤지컬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루는 게시판을 봤는데 이런 글도 있었다. ‘난 누구랑 누구의 조합을 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재욱이 많이 나오는 거야.’ 아 이런 거구나. 눈에 불을 켰다. 어느 순간 전쟁같이 다가왔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뮤지컬팬들을 하나씩 나에게 돌리고 싶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성공? 글쎄. 모르겠다. 하지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본능을 꿈틀대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뮤지컬은, 무대는 분명 나의 고향이자 원동력이었음을 새삼 곱씹게 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서고 싶다. 일본 진출도 현재 진행 중이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사진작가 이홍기

안재욱



-1971년 강원도 횡성 출생



-경동고, 서울예대 연극과



-1994년 MBC 공채 탤런트



-주요 드라마 : 짝(94년), 별은 내 가슴에(97년), 엄마야 누나야(2000년), 천생연분(2004년)



-영화 : 키스할까요(98년), 하늘정원(2003년)



-뮤지컬 : 베이비 베이비(95년), 아가씨와 건달들(98년), 살인마잭(2009년), 록오브에이지(2010년)

[시시콜콜] 결혼? 하고 싶은데 …



“내 주변의 기혼남들은 아무도 결혼하라는 사람이 없어요, 왜 그런 거죠?”




안재욱은 인터뷰 도중 “난 바쁘게 살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드라마 하나 하면 온통 그것에만 신경을 다 쓴다. 끝나면 무조건 몇 개월은 쉬어야 한다. 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트위터도 하지 않는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왜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도 했다. 단지 귀찮아 번잡하게 일을 벌이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나름의 철학은 분명했다. “내가 A라는 캐릭터로 몇 개월 시청자에게 보였다고 치자. 내가 그 인물에서 빠져 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시청자 역시 내게서 A를 지우려면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작품을 하는 게 난 예의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남자 배우들이 카리스마 있고, 불의를 무찔러 버리는 전형적인 영웅 역할을 좋아하는 데 반해 난 그런 게 별로 흥미 없다”는 말도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몸이 안 되니깐. 그런 건 이제 몸 좋은 후배들이 해야죠”라며 눈을 찡긋했다. “난 역시 자학 인터뷰의 최고봉이야”라며 주변을 웃게 만들고선 “어딘가 아픔이 있는, 이면이 보이는 인물에 끌린다”고 슬며시 답했다. 짐짓 무거울 듯한 분위기에선 유머를 불어넣고, 자칫 너무 가볍게 흐를 때는 중심을 잡을 줄 아는 이가 안재욱이었다.



안재욱은 땀이 많았다. 그냥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작진은 “1막 끝나고 무대 뒤로 오면 옷이 비에 쫄딱 맞은 것처럼 젖어 있다. 우리끼린 ‘땀 덩어리’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쉴 때는 보통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고 한다. “새벽까지 술 마시고 온 날은 아예 하루가 그냥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혼 생각은 없는 걸까. “왜 없어요. 하고 싶어요. 단지 절실하지가 않은 거지. 근데 왜 내 주변에 결혼한 남자들은 아무도 결혼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요. 난 그게 참 이상해. 왜 그런 거죠?”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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