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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해 이토 쐈다” 안중근 의사 친필 발견





독립기념관, 자료집 펴내



1910년 2월 22일자 일본 오사카마이니치 신문 7면에 보도된 ‘안중근 의사 친필’.



1910년 2월 22일자 일본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 7면에 보도된 ‘안중근 의사 친필’이 발견됐다. ‘안중근의 필적’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이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관련 해외 언론 보도를 수집해 6일 펴낸 『일본신문 안중근 의거 기사집』(전2권) 제2권에 수록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윤소영 연구원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일본인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 변호사의 수첩에 기록한 것”이라며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를 중국 고사에 비유했다”고 말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曲突徙薪無見澤(곡돌사신무견택)/焦頭爛額爲上客(초두난액위상객)/爲楚非爲趙(위초비위조)/爲日非爲韓(위일비위한)’(굴뚝을 구부리고 섶을 치운 이는 혜택이 없는데/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덴 이가 상객이 되었구나/초(楚)를 위한 것이지 조(趙)를 위한 것이 아니라네/일본을 위한 것이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



 앞의 두 줄은 중국 역사책인 『한서(漢書)』 ‘곽광전(藿光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曲突徙薪(곡돌사신)’이란 ‘굴뚝을 구부려 놓고 굴뚝 가까이에 쌓아 놓은 섶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는 뜻인데, 화근을 미리 없애 재앙을 예방한다는 의미다. 뒤의 두 줄에서 ‘곡돌사신’ 고사에 대한 안 의사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신문에는 이 글에 대한 안 의사의 해설도 실려 있다. 안 의사가 글의 의미를 미즈노 변호사에게 설명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것은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일이다. 화재의 근원인 굴뚝은 화도(火道)를 구부려서 만들고 모닥불은 □□□□(※확인 안 되는 글씨) 서서히 지펴야 하는데, 누군가가 큰 섶나무를 가져다 놓은 것을 빨리 알아채서 화재를 미연에 방지한 선각자는 아무런 상도 혜택도 없다. 오히려 마침내 큰일이 난 다음에야 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데며 허풍스럽게 불을 끈 구경꾼들이 상객이 되어 크게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이를 비유하기를 동양의 대화재는 아직 불길이 하늘을 태우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나는 이토라는 섶을 치워 한국이라는 굴뚝에 불이 나지 않도록 하였고 나아가서 동양이라는 하나의 가옥을 태우지 않도록 한 선각자이다. 즉 하얼빈의 거사는 정치범이라든가, 복수적이라든가라고 불릴 이유가 없고 동시에 비단 한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 한 것이다.”



윤 연구원은 “안 의사의 의거가 한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일본과 동양평화를 위한 거사였음을 당당히 밝히고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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