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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54) 난장판 결혼식 (하)





웨딩 드레스는 짓밟히고, 화환은 죄다 넘어졌다



1964년 11월 14일 결혼식을 마친 신성일·엄앵란이 워커힐 2층 테라스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케이크를 다 집어가는 대혼잡을 이뤘다.





결혼식장은 통제불능 상태가 됐다. 하객 3500여 명이 워커힐 퍼시픽홀을 덮쳤다. 영화사 제작부원 몇몇이 3000명이 넘는 하객을 통제하기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우리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결혼식장을 장악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당연했다.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져 나왔다. 정체불명의 하객과 맞선 거친 제작부 인력이 몽둥이로 누군가를 때렸는데, 맞은 사람이 마침 동아일보 기자였다. 그 기자는 하객을 몽둥이로 때리는 법이 어디 있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다행히 엄앵란의 친구 남편이어서 사후 우리가 정중히 사과하는 선에서 넘어갔다.



 앙드레 김이 정성스럽게 지어준 웨딩드레스도 짓밟혔다. 여왕처럼 머리에 관을 쓴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는 환상적이었다.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앙드레 김은 레드 카펫 앞까지 신부가 쓰고 갈 수 있는 망토를 세트로 만들어주었다. 길게 늘어트린 엄앵란의 망토는 뒤에서 누군가에게 밟혔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망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엄앵란은 이성을 잃고 좌중을 향해 고함쳤다.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너무 하는 것 아닌가요.”



 충분히 화날 만 했다. 그러나 신부가 직접 고함치는 건 지나쳤다. 나는 말도 못한 채 참으라는 의미로 엄앵란의 발등을 꾹 밟았다. 그 때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엄앵란은 지금도 주부강좌에서 기회가 있으면 ‘그 때 발등 눌린 기운으로 지금도 눌려 산다’고 말하고 있다.



 객석의 웅성거림은 혼을 빼놓는 수준에 이르렀다. 레드 카펫 양쪽으로 나란히 세워놓은 국화꽃은 죄다 넘어졌다. 호텔 직원들이 꽃을 정리하고 난 후, 나는 누군가 입장하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성큼성큼 걸어 주례를 보는 오재경 국제관광공사 총재 앞에 섰다. 오 총재는 당황스런 얼굴을 했다.



 “내가 안 불렀어. 장내가 정리되면 그때 나오게.”



 주례 앞에서 퇴장했다가 재입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침착한 오 총재도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했다. 최무룡·김지미 지인들은 아예 입장을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접수계가 없었다. 그들은 근처의 워커힐 슬롯머신으로 가서 축의금을 탕진했다. 거금 200만원을 들인 결혼식에 접수된 축의금은 단돈 2만 2500원.



 전국의 소매치기는 다 몰려든 것 같았다. 친척을 운운하며 축의금을 가로챈 ‘네다바이(일본어로 사기라는 뜻)’도 부지기수였다. 오 총재는 2층 테라스로 올라가 입장 못한 하객들을 위해 인사하라고 했다. 2층에 올라갔더니 워커힐 측에서 120㎝ 높이의 대형 케이크를 마련해 놓았다. 꼭대기에 우리 커플의 모습을 조각해놓은 멋진 케이크였다. 둘이서 케이크를 커팅하는 순간, 사방에서 손이 뻗어 나오더니 케이크를 낚아챘다. 케이크는 순식간에 공중 분해됐다.



 결혼식 후엔 웨딩카가 인파에 밀려 사라졌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다. 웨딩카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작부장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길을 냈다. 우리는 제작부장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워커힐 빌라에 피신해 한동안 갇혀 있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결혼식이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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