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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51) 불 꺼진 4호실





“나 떨어져” 5층 창문에 붙어 엄앵란을 불렀다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 1964년 LP판 재킷. 신성일과 엄앵란은 이 영화를 부산에서 찍으며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냈다. [고서점 호산방 제공]



매일 얼굴을 보면서도 연애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신세. 엄앵란을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1964년 여름 ‘동백아가씨’의 3박4일 부산 촬영일정이 나왔다. 더 좋은 기회는 앞으로 없을 것 같았다. 서울에선 사람들 때문에 손 한 번 잡을 시간이 없었다.



 엄앵란의 집은 남산동 외교구락부 못 미쳐 오른쪽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두어 번 식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집은 컸지만 친척들의 왕래가 잦았다. 또 그 집 위쪽에 다른 집 두세 채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들 동향을 눈치챌 수 있어 나는 차 조수석에 몸을 숨긴 채 들어가곤 했다.



 나와 엄앵란은 3박4일 여정을 철저히 준비했다. 엄앵란은 여동생, 보조하는 아이, 기사와 함께 59년형 시보레 스테이션웨건을, 나는 남자 일행 셋과 함께 크림색 닷지 웨건을 탔다. 이태원 미군부대에서 먹거리와 아이스박스를 구입해놓았다.



 촬영팀이 머문 곳은 부산 중앙동 반도호텔. 부산역에서 가까웠다. 반도호텔 부근에선 ‘40계단’이 유명했다. 65년 나·최지희 주연의 ‘무정의 40계단’, 99년 안성기·박중훈 주연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무대가 된 곳이다. 해방 후 귀환동포, 한국전쟁 피난민이 이 주변에 모여 살았고, 동광동·영주동 판자촌을 가려면 이 계단을 거쳐야 했다.



 반도호텔은 말만 호텔이었다. 전체 5층으로 한 층에 방 5개가 전부였다. 나와 엄앵란 식구들이 5층을 썼다. 계단에서 올라오면 1호실이 가장 먼저 나오고, 2호실부터 5호실까지 횡으로 늘어섰다. 1호실은 내 식구, 2호실은 엄앵란 기사, 3호실은 엄앵란 여동생과 코디, 4호실은 엄앵란, 5호실은 내 방이었다.



 부산을 떠나기 전날 밤, 엄앵란 방에 잠입하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밖에선 방범대원이 통행금지를 알리는 딱딱이 소리가 들렸다. 나를 제외하고 남자가 넷. 그들은 양쪽에서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먹은 다음 복도에 앉아 밤새 고스톱을 칠 기세였다. 내가 엄앵란 방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꼴이 됐다.



 호텔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2·3호실, 4·5호실 욕실이 마주한 구조였다. 4호실과 5호실에는 파이프가 붙어있었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좁은 욕실 들창을 통해 4호실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들창을 열고 내려다보니 낭떠러지나 다름없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욕실 밖으로 물이 흐르는 홈통이 지나갔다. 나는 야생동물처럼 민첩하게 창틀을 붙잡고 홈통에 발을 디딘 채 4호실 들창 앞에 이르렀다. 창문을 두드리자 불이 켜졌다. 넉살 좋게 말했다.



 “미스 엄, 나 떨어져 죽어.”



 깜짝 놀란 엄앵란은 나를 끌어올렸다. 생명을 건 모험은 대성공이었다. 그날 밤 목욕을 막 끝낸 엄앵란을 처음으로 안을 수 있었다. 잊지 못할 초야였다.



엄앵란은 창틀에 매달린 나를 보고 ‘아,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 밖으로 뛰어나가면 모두에게 알리는 꼴이 된다. 한 살 연하의 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날 운명을 받아들였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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