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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것 없는 시각예술...현대미술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1『테마 현대미술 노트』 (두성북스, 2011)
올 상반기 가장 좋았던 노래·공연·전시 등등에 나만의 순위를 정해본다. 나만의 리스트는 내가 작품을 두고두고 음미하는 좋은 방법이다. 2011년 상반기 최고의 미술 작품은 영국의 젊은 작가 카티 패터슨(Katie Paterson)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달이 연주하는 ‘월광 소나타’를 들려주었다. 이 음악은 베토벤이 연인 줄리에타 구치아르디에게 헌정했던 것이다. ‘월광 소나타’라는 제목은 후에 음악평론가 렐슈타프가 붙인 것으로, 사실 달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어쨌거나 달의 대표 음악이 된 이 곡을 작가는 달에게 헌정한다. ‘월광 소나타’는 모스부호로 전환돼 EME(Earth-Moon-Earth) 라디오 송신기 시스템을 통해 달을 향해 쏘아진다. 달 표면에 반사돼 되돌아온 신호는 다시 악보로 옮겨져 자동 피아노로 연주된다. 울퉁불퉁한 달 표면때문에 음의 일부가 소실된 ‘월광 소나타’는 원곡에 비해 다소간 어눌하고 원시적이다.

이 작품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사풋 간지러움을 느낀다. 참 어여쁜 생각이다. ‘월광 소나타’에 관해 달의 견해를 묻는 것은 오래전 신화의 옷이 벗겨지고 과학적 탐구 대상이 된 달에 다시금 인간의 온기를 입히는 따뜻한 행위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볼 게 없다. 갤러리에 전시되는 미술품인데. 모스부호로 번역된 악보를 보는 것과 달이 연주하는 ‘월광 소나타’를 듣는 게 전부다. 아름답지만 ‘볼 것 없는’ 시각예술(visual art)-이것이 현대미술의 한 단면이다. ‘볼 것 없는’ 시각예술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와 선례를 전제로 한다.

진 로버트슨과 크레이그 맥다니엘의 『테마 현대미술 노트』(2011, 두성북스, 2만9500원)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미술을 매우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이 책은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최근 30년 사이의 미술을 다루고 있다. 이 30년은 역사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진 시기다. 책은 30년 사이에 벌어진 미술사 안팎의 주요한 사건을 정리하는 일로 시작한다. 기존 매체의 번성 속에서 새로운 매체의 발전, 세계화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적 지형도의 형성, 포스트모더니즘 등 이론의 막강한 위력 행사, 미술과 문화의 융합 등이 그들이 주목하는 현상들이다.

2 르네 콕스의 ‘그녀의 귀환’(2001), 알루미늄 위에 기록용 디지털 C-프린트, 292x366cm
저자들은 미술 사조에 의한 분류 대신 정체성·몸·시간·장소·언어·과학·영성이라는 일곱 가지 주제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정리한다. 사조 중심 혹은 매체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흡족하지 않을 만큼 현대미술은 복잡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매체와 형식이 새롭게 등장할수록 내용은 중요해진다. 각 주제와 관련된 이론적인 논의를 요약하지만, 저자들은 작가들의 실천을 이론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론가들의 발언만큼, 실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작품을 하는 작가들의 실천적인 발언을 많이 인용한다. 책의 목표가 현대미술의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개 양상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애나-퍼듀 대학 헤론미술디자인 학교의 교수인 저자들은 학생들에게 방대하고 난해한 현대미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려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은 발간 당시 “현대미술 입문 강좌에서 최고의 교재”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예로 드는 작품에 대한 풍부한 언급들은 단순한 입문서를 넘어서게 한다.

책에서 다루는 일곱 주제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그 함의가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주제인 ‘과학’과 ‘영성(spirituality)’이다.

과학과 미술은 언제나 살을 맞대고 발전해왔다. 예컨대 1967년 설립된 MIT의 첨단시각연구센터(CAVS)는 오토 피네(Otto Piene), 토드 실러(Todd Siler) 같은 과학과 깊이 연루된 미술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더불어 저자들이 미술과 관련해 주목하고 있는 과학 분야는 생물학이다. 이에 기반한 바이오 아트(Bio Art)의 발전에 대해 저자들은 많은 관심을 보인다. 과학은 예술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미술에 기술적 발전과 새로운 영감을 주고, 예술은 과학이 해결하지 못한 인간적인 문제에 답을 주는 오랜 협업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이 균형적 관계를 염두에 둔 주제가 바로 ‘영성’이다.

마지막 장인 ‘영성’은 이 책의 가장 개성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영성’이란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속하고자 하는 통상적 갈망이나, 삶의 근원과 죽음의 본질을 알고 싶은 욕망, 우주에 작용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가해한 힘에 대한 인정 같은 것”을 의미한다. 키키 스미스, 로버트 고버, 제임스 터렐, 게르하르트 리히터, 볼프강 라이프, 아니쉬 카푸어, 아그네스 마틴 등의 작가들이 거론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맹위를 떨치는 동안 예술은 다양한 지배 구조를 해체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누락되었던 것이 바로 ‘아름다움’과 저자들이 말하는 ‘영성’의 추구라는, 예술 본연의 기능이었다. 명백하게 특정 종교와 관련을 갖지 않더라도, 결국 작가들이 ‘영성’이라는 주제에 끌리는 이유는 “도덕과 윤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들은 미술에서 ‘영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주요한 배경을 전쟁·테러·환경문제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의 발발이라고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수지 개블릭(Suzie Gablick)은 91년 이미 “일종의 영적 치유를 거치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난장판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저자들이 본격적인 화답을 하게 된 것은 9·11 테러 이후 미국 문화의 자기 반성과 집단적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래의 예측에서 매우 유보적인 태도를 보임에도 저자들은 “인간성의 가장 깊은 측면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힘”, 즉 ‘영성’의 힘을 미술에서 다시 찾기 시작한다. 미술이 가진 휴머니즘적인 측면을 다시 부각시킴으로써 이 책은 지난 30년간을 정리하고 동시에 미래로 나가는 길을 열어놓는다.

kmedichi@hanmail.net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미술의 빅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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