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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면 예술 지원, 잘 못하면 횡령...한국엔 뚜렷한 기준 없어

아먼드 해머 미술문화관
기업이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하는 활동이나 지원자를 메세나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고문으로 문화 활동을 지원했던 가이우스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기업 경영자들이 미술품을 사주거나 미술계에 투자해 주는 것은 그동안 춥고 배고팠던 미술계에는 커다란 축복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뜻있는 경영자들에 의해 메세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메세나는 상당 기간 동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기업환경이 나빠지면 메세나는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메세나가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수익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세나를 적극적으로 하는 경영자는 자칫하면 회사의 소중한 재산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상법상 주주들을 대신하여 경영을 담당하는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들에 대해 충실할 의무 및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도 반드시 미술품 수집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회사 상태가 어려워지면 경영자가 미술품을 수집했던 것이 언론 등에 의해 집중적으로 비난받곤 했다. 대규모 횡령과 회계부정으로 곤욕을 치른 타이코의 대표이사가 회사 비용으로 값비싼 모네나 르누아르 등 대가의 작품들을 사들인 것이나 결국 회계부정으로 파산하여 주주들과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친 엔론의 경영자들이 엄청난 해외 미술품을 사 모았던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체로 경영진의 미술품 수집을 견제할 장치가 회사 내에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판례를 보면 전통적으로 미국 법원들은 경영자가 미술과 문화활동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낭비’를 하면 주주들에게 책임을 진다고 본다. 가령 미국의 옥시덴탈 석유회사 주주들은 회사가 무려 8500만 달러를 들여 창립자의 이름을 딴 ‘아먼드 해머 미술문화관’을 설립하는 것은 회사 재산의 낭비이며 배임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루한 재판 결과 법원은 창업자인 아먼드 해머가 수집한 약 3억 달러에 달하는 각종 미술품을 일반에 전시 보관하기 위해 회사가 아먼드 해머 미술문화관을 건립한 것은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 알 수 있는 교훈은 이렇다. 기업이 상당한 이익을 내고 있다면 상당한 정도로 미술품을 사거나 기부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이사회 동의를 얻어야 하고 또 가급적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좋다는 것, 그리고 주주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기업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는 경영자가 회사 공금을 미술계에 기부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아직 뚜렷한 판례가 없다.
하지만 경영자가 회사 공금을 정치 헌금으로 쓴 경우에 대해서는 얼마의 판례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경영자가 회사 재산을 처분하여 조성한 돈을 정치자금으로 기부한 경우 그것이 회사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기부가 회사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이나 다른 목적으로 행해졌다면 회사에 대해 횡령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미술품 수집과 관련된 중요한 판례가 나올 것 같다.
지금 미술계는 어느 대기업의 미술품 투자에 대한 법적 문제로 떠들썩하다. 이 사건에서 경영자는 미술품 구입을 정상적인 재산 투자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그러한 투자는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투자이므로 통상적인 기업의 투자활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해당 기업의 경영자는 해외 유명 작가의 미술품들을 계열사 돈으로 사서 자기 집에 보관했다는데 이처럼 회사 돈으로 구입한 미술품을 집에 걸어둔 대기업 오너가 횡령죄로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앞으로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재판이 메세나에 대해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이번 사건이 금융위기를 지나 조금씩 활발해지는 메세나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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