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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상한 시절, 갈증 풀어준 한줄기 맑은 詩語

1970년대가 ‘소설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시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를 중심으로 70년대에 소설들이 대중문학 혹은 문학의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80년대에는 노동자시 혹은 농민시라는 이름으로 시들이 시대의 아픔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80년대 ‘시의 시대’는 다시 정치적 상황의 변동에 따라 전반기와 후반기가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민중시 혹은 저항시의 속성이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면 80년대 ‘시의 시대’는 어차피 태생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정확하게 말하면 제5공화국 말기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정통적 서정 시편들이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이런 서정시에 독자의 반응도 처음에는 그저 관망하는 분위기였으나 86년 말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출간되면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수십만 부가 팔려 나가는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접시꽃 당신’에 이어 이듬해인 87년 3월에 출간된 서정윤의 ‘홀로서기’도 마찬가지였다. ‘시집은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던 시절에 이 두 권의 시집에 쏠린 그와 같은 독자의 관심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라 할 만했다.

이 두 권의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각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도종환은 등단하면서부터 민중문학 성향이었고, 더군다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통한 적극적인 활동이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생각하는 독자가 많았다. 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도종환은 충북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76년부터 교직생활에 몸담고 있었다. 그가 문학활동을 시작한 것은 서른 살에 접어든 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궁핍하고 외로웠던 성장기의 상처를 절절하게 묘사해 주목을 끈 그는 다음해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창작과 비평사에서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를 펴낸다.

도종환이 ‘접시꽃 당신’을 쓰게 된 것은 아내의 죽음이 계기였다. 등단하던 무렵 결혼한 그는 아내가 두 아이를 낳은 뒤 위암으로 와병하게 되자 아내의 곁을 지키며 틈틈이 아내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를 쓴다. 아내가 죽은 뒤 세상에 나온 ‘접시꽃 당신’은 아내의 투병과 죽음의 비극을 바탕에 깔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요소였다. 도종환은 88년 계속해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이라는 제목의 서정시집을 펴내지만 그의 문단활동과 교직활동은 여전히 참여적이었고 투쟁적이었다. 89년에는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맡았다가 해직된 후 투옥되는 곤욕을 치렀고, 풀려난 후에는 민예총 충북지부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반면 서정윤은 도종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등단하기까지의 과정도 제도권 문단의 정통 코스를 밟았다. 57년 대구에서 태어난 서정윤은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여러 해의 습작기를 거쳐 84년 김춘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서녘바다’ ‘성’ 등을 발표하면서 데뷔한다. 시집 ‘홀로서기’가 첫선을 보인 것은 87년 3월이었지만 ‘홀로서기’라는 제목의 시가 처음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6년 전인 81년에, 그것도 대학 교지에 발표된 시라는 점이 흥미롭다. 서정윤이 재학 중 교지 ‘영대문화’에 발표한 일곱 단락의 시 ‘홀로서기’는 발표되자마자 카피 혹은 필사본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몇몇 지방 방송이 이 시를 소개하고, 많은 여성이 편지에 시구를 인용해 쓰면서 ‘홀로서기’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비정상적인 경로로 유통되다 보니 아직 등단 전인 서정윤의 이름은 차츰 자취를 감추고 독자들 사이에선 ‘서정주의 시다, 아니다 김남조의 시다, 아니다 김춘수의 시다’ 하는 따위의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시집 ‘홀로서기’를 찾는 고객이 갈수록 늘어나자 시 ‘홀로서기’를 복사해 한 부씩 나눠주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 무렵 출판사 ‘청하’를 운영하던 시인이자 평론가인 장석주는 서둘러 시집 ‘홀로서기’를 출판했다. 시 ‘홀로서기’를 비롯해 50여 편의 시가 실린 시집 ‘홀로서기’는 시중에 깔리자마자 한 달에 수만 권씩 팔려 나가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장석주는 후에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체제비판적인 민중시와 같은 시대적 프리미엄이 전혀 없는 서정시라는 점에서 이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열화 같은 반응은 ‘홀로서기’가 스스로 이룩하고 있는 탁월한 서정성, 혹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안쓰러움, 절대고독의 가치, 젊음의 방황 등과 같은 주제의 대중적 호소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데 똑같은 서정시의 계열이면서도 ‘접시꽃 당신’과 ‘홀로서기’는 궁극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는 사뭇 다르지 않느냐는 견해도 많았다. 곧 ‘접시꽃 당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희생적 사랑을 통해 공동체적 의미의 사랑을 파악하려 한 반면, ‘홀로서기’는 고독한 존재 의미로서의 사랑을 천착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도종환·서정윤의 ‘문단적 성분’과도 일치해 관심을 모았다.

어쨌거나 이들 두 서정시집의 돌풍은 민중시로부터 시작된 80년대 ‘시의 시대’를 오래 지속하게 하는 촉매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갖게 했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80년대 후반에 나타난 ‘반짝 돌풍’에 그치고 말았다. 일부 시인과 시집 전문 출판사들의 서툰 상업주의 탓이었다. 이들은 이미 출간된 인기 시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속편 시집을 내놓아 시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했으며,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대어 대중적 호기심에 영합하는 수준 낮은 시집을 양산함으로써 시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무모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197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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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