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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7월의 주제 ‘당신의 여름을 훔치다’

덥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시원한 빗줄기에 잠시 더위를 식히지만 올 여름을 버텨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하는 ‘이 달의 책’ 7월 주제는 ‘당신의 여름을 훔치다’다. 긴박한 구성과 치밀한 얘기로 더위는 물론 시간도 잊게 해줄 소설 세 권을 골랐다. 책에서 흘러나오는 냉기(冷氣)에 온 몸을 맡겨 보시길….


실수로 사람 친 자, 복수 노리는 자 … 누가 악인인가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520쪽, 1만3000원


“나는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이런 첫 문장에 빨려 들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폭풍 같은 소설이다. 한 번 잡으면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온다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따위의 일상과 섞이는 게 꺼려질 정도다. 등장인물들이 휘말린 어마어마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생리적 욕구나 신변잡기가 부질없이 느껴진다.

 살다 보면 인간으로선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이란 게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한 번쯤은 온다. 누구는 그걸 운명이라고 하고, 누구는 고통이라고 한다. 아니면 ‘신의 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그 도저한 세계 한복판에 있는 동안은 나를 메다꽂는 힘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는 거다. 『7년의 밤』이 폭풍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500여 쪽을 읽는 동안 그 명제로 온몸이 저릿저릿해지기 때문이다. 평면의 문장을 온 몸으로 읽게 하는 3차원과 공감각의 힘. 치밀하게 준비되고, 사려 깊게 쓰여진 웰메이드 소설의 힘이다.




[일러스트=강일구]

 소설의 무대는 세령호(湖). 수몰된 마을을 묻고 세워진 댐 마을에 원주민과 사택 주민이 공존한다. 한때 잠시 촉망 받았던 야구선수였지만 팔 고장으로 맥없이 물러난 최현수가 댐 보안팀장으로 부임한다. 거인 같은 덩치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한 남자다. 그에겐 절망적인 성장환경을 딛고 생존에 성공한 이악스런 아내 은주와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 서원이 있다. 음주운전을 해 세령호로 내려오던 현수는 마을의 실질적 주인인 영제의 딸 세령을 차로 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한 순간의 실수로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 건 “사실과 진실 사이엔 ‘그러나’가 있고, 우리 모두는 ‘그러나’를 피해갈 수 없다”는 작가의 통찰이다. 몇 줄로 요약되는 소설의 줄거리엔 ‘그러나’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위한 작가의 공력이 숨어있다. 잠수에 관한 취재와 묘사는 최현수 부자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보는 실질적 화자 승환과 유기적으로 얽히며 이 소설을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7년의 밤』이 주는 가장 큰 매혹은 뭐니뭐니해도 문장이다. “내 안에 사형집행자가 산다고. 주 고객은 아버지이나 때로 타인의 목에도 밧줄을 건다고. (…) 그러니 당신, 조심하라고”(40쪽), “죽고 싶었다면 호수로 뛰어들었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버둥거린 끝에 유리공 하나를 손에 쥔 남자의 차가 아니고”(121쪽) 등등, 작가는 스타카토로 끊어 쳤다가 접속사로 유장하게 받아 올리는 식으로 언어의 기술을 유려하게 구사한다.

 한국 여성작가들이 피해가기 어려웠던 사(私)소설의 느낌을 싫어했다면, 『7년의 밤』은 뛰어난 예외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후 쏟아진 찬사 중 ‘여성작가로선 드문 장대한 서사의 힘을 보여줬다’는 게 많았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여성작가로선’이라는 수식어는 이 작가에겐 모욕이다.

기선민 기자


월가 폭탄테러, 그리고 섬뜩한 미모의 프랑스 여인 …





 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현대문학
710쪽, 1만4800원


별 다섯 개가 만점인 평점 매기기라면 다섯 개 모두를 주고 싶은 소설이다. 단 조건이 있다. 카테고리는, 그런 게 있다면 ‘엔터테인먼트 문학’이어야 한다는 것. 그만큼 재미 있다. 700쪽이 넘다 보니 중간에 책 읽기를 중단해야 했을 때 안타까울 정도였다. 역으로, 소설에서 재미 아닌 다른 감동, 가령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나 연민, 예술적 문체 같은 걸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 문학적이기보다 오락적이다. 회한 같은 건 없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매끄럽고 짜릿하다.

 소설은 사실(팩트)의 듬성듬성한 뼈대 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팩션이다. 1920년 9월 16일 뉴욕의 월가 한복판에서 수십 명이 사망한 실제 폭탄 테러가 소재다. 당연히 줄거리의 한 축은 사건의 진실을 캐는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나머지 한 축은 선남선녀간의 러브 스토리. 돈 많은 의사인데다 적당히 마초 기질도 있는 미국인 남성 스트레섬 영거, 섬뜩한 미모에 지적이기까지 한 프랑스 여인 콜레트 루소 간의 밀고 당기는 연애가 테러 사건에 긴밀히 녹아 든다.

 선택 받은 듯 번듯한 주인공들에게 좌절은 없다. 물론 그들도 수시로 불안해 하고 갈등에 빠진다. 고초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소설은 해피엔딩이리라는 예감이 든다. 가령 영거는 극한 상황에서도 낙천적이다. 셜록 홈즈 뺨칠 정도로 유능한 경찰 수사관 리틀모어에게 풀지 못할 난제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제2차 세계대전사, 자연과학·의학 등에 대한 저자의 지식이 해박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현직 예일대 법대 교수이자 『타이거 마더』를 쓴 에이미 추아의 남편이기도 하다. 아마 그런 지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프로이트가 등장해(영거가 그의 제자였다) 두 남녀의 연애상담을 하고, 퀴리 부인(콜레트의 스승이다)이 깜짝 등장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저자는 국내 독자들과 구면이다. 이미 소개된 『살인의 해석』이 그의 첫 소설이다. 영거와 리틀 모어는 여기에 나왔던 연작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신준봉 기자


남자 잘못 만나 망가진 똑똑한 여기자의 분투기





 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밝은세상
564쪽, 1만3800원


책장을 앞으로 자꾸 넘겨보게 된다. ‘옛날 샐리는 도대체 어땠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샐리는 최악이다. 즉흥적이라 할 만큼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산후 우울증에 남편의 배신이 겹쳤다. 귀에선 이상한 소리가 난다.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사방의 벽이 다가와 짓누르는 것 같다. 아이는 밤새도록 울어대고 모유 수유는 고통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곁에 없다는 사실이다. 샐리는 영국에 온 미국인이다. 그를 런던에 데려온 영국인 남편 토니는 늘 부재 중이다. 유난히 바쁜 직장, 즉 신문사가 좋은 핑계다.

 옛날의 샐리는 자신감 넘쳤다. 보스턴 지역신문의 여기자, 중동지역에 자원해 들어간 특파원이다. 안정보다 모험을 즐겼고, 가정을 꾸리기보다 일을 선택했다. 중동의 포화 속에서 운명적으로 동료 기자 토니를 만난 후 샐리의 삶은 망가진다. 추락하는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바닥으로 가라앉는 삶엔 인정이 별로 없다.

 묘사는 불편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임신 중 피부 가려움으로 시작해 산후 불면·환청 등 각종 고통이 적나라한 언어로 나타난다. 모든 문제를 샐리 혼자의 것으로 돌리는 남편은 우리 옆 집에도 한 명 있을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무슨 말을 들어도 한번 비틀어 생각하게 되고, 낙관이라곤 할 수 없게 되는 샐리의 변화 또한 구체적이다.

 샐리의 고통은 일반적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타인의 불행으로만 밀어놓을 수가 없다. 작가의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묘사 덕분이다. 옮긴이조차 “번역자는 중심을 잡고 등장인물 모두와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샐리의 고통에 마음이 아팠고 그를 간절히 응원하게 됐다”고 했다.

 잘 나가던 여기자가 ‘남자 잘못 만나’ 초고속으로 망가지는 간단한 이야기인데, 책장을 덮으면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것도 작가의 힘 덕분이다. 그는 스스로의 삶과 사투를 벌이는 샐리를 통해 우리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책장을 앞으로 넘겨 작가의 사진을 들여다보게 하는 신기한 소설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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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