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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의 합리성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계몽시대 이후 근대 사회를 지배해 온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합리성’이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합리성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도구적 합리성’이다. 사회와 조직이 설정한 가치와 목적은 제도 및 전략 차원의 도구적 합리성의 지지(支持)에 의해 실행되고 유지된다. 도구적 합리성은 철저한 논리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 결과는 충분히 예견적(豫見的)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다. 사회 집단 및 구성원들 간에 공유된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결여된 도구적 합리성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으로 인해 사회와 조직의 목적 및 도구는 비로소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 두 가지 합리성이 모두 우리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양자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함도 또한 문제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쟁을 들여다보자. 수사권 문제의 핵심 가치와 목적이 사회 정의의 실현이어야 함은 자명하다. 국민이 안심하고 사회·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튼실한 방패막이를 해 주는 것이 공권력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명백한 공권력의 존재 목적이 서 있는 자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검찰과 경찰의 기관 이기주의가 원래의 목적을 대치하고 있다. 수사권 문제가 대통령령, 행정안전부령, 혹은 법무부령으로 다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도구적 합리성 논의로까지 발전할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먼지만 잔뜩 날린 채 표류하고 있다.

 4대 강 사업은 2008년 말부터 약 22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토 균형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한국형 뉴딜 사업이라는 분명한 목적과 도구적 합리성의 깃발을 날리며 시작됐다. 이를 한편에서는 4대 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부른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4대 강 죽이기 사업이라고 부르고 있다. 과다 예산 논란, 경기부양 효과의 진위, 환경 및 문화재 훼손 문제 등 다양한 반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여전히 의사소통의 합리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10년 MBC PD수첩과 KBS 추적60분의 4대 강 사업 방송이 취소되면서 이 사업을 둘러싼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대한 문제가 다시 한번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 4대 강 사업 취소 소송에서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도구적 합리성은 한층 더 힘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반값 등록금 논쟁은 어떠한가? 대학 등록금이 국민 가계에 큰 부담임은 사실이다. 무엇이 정말 문제였는가에 대한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적 합리성을 확보하고 제시해야 한다. 국가 교육 재원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대학의 재정 운용에 문제가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안의 문제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 도구적 합리성을 위한 논의가 적절한 타이밍을 상실한 데 있다. 따라서 여론의 풍향계를 따라 정책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2014년까지 총 6조8000억원의 재정과 1조5000억원의 대학 장학금을 투입해 대학등록금을 30% 인하하는 정책 대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 측면에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청와대도 이 대안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에서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라는 명분하에 도구적 합리성이 경시되는 경향은 정치의 계절에 더욱 부각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중요한 사회 의제가 본격적인 토론을 위한 원탁 테이블을 건너뛴 채 대중 정치인의 목소리를 타고 길거리로 먼저 나갔을 때의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배제한 채 도구적 합리성만을 독단적으로 주장할 때 소중한 가치와 목적의 당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의 합리성의 최적 균형 비율을 찾는 것이 우리 정치의 과제다. 국민의 냉소와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두 가지 합리성 간의 최적 균형 비율 감각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고민으로부터 우리 정치와 언론 모두 자유롭지 않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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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