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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당권 주자 인물 탐구 ③ 남경필





“4선인데 소장파, 피터팬이라니 … 난 14년째 꾸준히 커온 정치인”





남경필 의원의 이름 앞엔 늘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한나라당 소장파 리더’다. 4선 중진으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직을 맡고 있지만 33세에 일찌감치 의원이 됐기에 46세인 그는 여전히 소장파로 통한다. 그런 그를 ‘피터팬 아니냐’고 폄하하는 이들도 당내엔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 그는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수요모임’을 이끌었고, 경기도당위원장도 지냈다. 또 철학에 기반한 정책도 많이 내놨다. 나는 14년째 꾸준히 성장해 온 정치인”이라고 반박한다.



 - 왜 소장파에서 대표가 나와야 하나.



 “당에서 소장파는 늘 비주류였다. 우리 같은 비주류가 당을 맡아야 국민이 ‘정말 바뀌었구나’ 하고 믿는다. 계파의 이익에 취해 지낸 주류가 ‘당을 바꾸겠다’고 또 외쳐 봐야 믿지 않는다. 지난해 전당대회 2·3등(홍준표·나경원 후보)이 다시 1·2등이 돼선 안 된다.”



 -‘소장파는 양지만 밟는다’ ‘책임은 안 지고 비판만 한다’는 말도 있다.



 “나만 해도 현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그래서 그런지 사찰도 받았다. 어떻게 ‘양지만 밟아 왔다’고 할 수 있느냐. 또 당이 표류할 때마다 소장파는 당의 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쳐 관철시켰다. 소장파가 없었다면 한나라당이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겠느냐.”



 남 의원은 ‘2세 정치인’이다. 고 남평우 전 의원이 아버지다. 남 전 의원이 운수회사와 언론사를 경영했기에 남 의원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원래 정치에는 큰 뜻이 없었는데, 미국 유학 중이던 1998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그 지역구(수원 팔달)를 물려받게 됐다.



 이런 남 의원이 2003년 소장파를 이끌고 ‘17대 총선 물갈이론’을 주도하자 중진들은 발끈했다. 정형근 당시 의원은 그런 남 의원을 겨냥해 “오렌지족”이라고 공격했다.



 -‘오렌지족’이란 꼬리표가 아직도 따라다닌다.



 “유복하게 자라 보수적일 줄 알았는데 내가 진보적인 의견을 내자 원로 선배들이 놀랐던 것 같다. 그래서 ‘빨간색 아니면 파란색’이란 색깔론에 끼워 맞출 수 없으니 오렌지색을 들이댄 것이다. 미국에서 친서민 정책의 가장 큰 성과를 낸 지도자는 부유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내가 하려는 게 그런 정치다.”



 -친박근혜계의 지지를 얻으려 다른 후보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수도권이다. 박 전 대표가 수도권 지지세를 확장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다. 친박계가 투표할 때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겠느냐.”



 남 의원은 “지금 3위 정도 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도 대표론’이 뜨면서 분위기는 내 쪽으로 쏠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남경필
(南景弼)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8대)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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