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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45) 내 남자, 내 여자





피맺힌 엄앵란을 안고 달렸다, 내가 다친 줄도 몰랐다



신성일(오른쪽)·엄앵란이 영화 ‘잃어버린 태양’(1964)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진 ‘대륙의 밀사’ 직후 찍은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큐피드는 경기도 가평 청평호 위에서 나와 엄앵란에게 화살을 계속 쏘아댔다. 키스 사건 이후 또 한 번의 화살이 우리를 묶어버렸다.



 1964년 늦봄 다시 청평호에서 ‘대륙의 밀사’를 촬영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 밀사들을 다룬 시대극이다. 나와 엄앵란이 일본군에 쫓기는 마지막 장면을 찍게 됐다. 내가 보트에 여인을 태우다가 뒤에서 총을 맞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대목이었다. 이어 엄앵란이 보트에 로프를 걸어 물에 빠진 나를 끌고 가는 설정이었다.



 물 위로 총알 튀기는 장면이 실감나야 했다. 폭파감독은 수류탄 내관에 플러스·마이너스 선을 연결해 물 위에 띄워놓고 터뜨렸다. 요즘은 PVC 비닐에다가 마그네슘도 넣고, 횟가루도 넣고, 선을 넣어가지고 밀폐해서 아주 작은 팩으로 만든다. 사이즈는 엄지손가락만하지만 폭발하면 불길도 나고, 마그네슘이 타면서 석회분 가루도 튀니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제대로 난다.



 수류탄 구리 뇌관이 ‘파파파’ 소리와 함께 터졌다. 그게 불행히도 엄앵란의 얼굴을 향했다. 물에 빠진 상태에서 올려다 보니, 엄앵란의 얼굴이 핏자국으로 변해있었다. 얼굴로 먹고 사는 여배우에겐 치명타였다. 나는 급히 보트에 올라타 핸들을 뭍으로 돌렸다.



 인근 병원에서 간단하게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쏜살같이 을지로5가 메디컬센터로 갔다. 독일의 지원을 받은 외국계 병원으로, 당시 서울대병원 다음으로 유명했다. 병원에선 ‘신성일·엄앵란이 왔다’고 난리가 났다. ‘맨발의 청춘’으로 우리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태원 181번지 2층 하얀집을 480만원에 샀을 정도로 돈도 벌었다.



 결혼 후 얘기지만 전 가족을 데리고 남이섬 별장에 갔을 때도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는 전용보트로 휴가물품을 실어 옮겼다. 인근 주민들이 온종일 별장을 둘러쌌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신세가 됐다. 나는 화가 나 그날로 별장을 처분해 버렸다.



 메디컬센터 의사들이 와서 엄앵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구리 뇌관이 면도칼 조각처럼 얼굴을 쫙쫙 긁고 지나갔다. 눈을 안 다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 때는 성형외과가 없었다. 의사는 치료를 마치고 난 후 ‘더 이상 손댈 게 없습니다. 다시 약 바릅시다’라고 정리했다.



 그런데 왠지 내 뒤가 따끔따끔했다. 등과 엉덩이를 살피던 의사가 물었다.



 “미스터 신은 괜찮아요?”



 “저도 뒤가 이상한데요. 한 번 봐주세요.”



 알고 보니 내가 엄앵란보다 더 큰 부상을 당했다. 엉덩이·허벅지 등 바지 뒷부분이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엄앵란에 신경을 온통 쏟은 바람에 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엄앵란은 이 사건으로 나를 평생의 배우자로 확신했다고 한다.



 우리를 태운 차는 청평에서 서울까지를 전속력으로 달려 1시간 반 만에 주파했다. 그 시간 동안 엄앵란은 내 품에 안겨있었다. 내가 부상 당한 것도 모르고 엄앵란을 걱정해주었으니. 이 사건으로 신성일은 한 살 연상인 엄앵란의 마음 속에 ‘여자를 보호하는 남자’로 각인됐다. 나 역시 내가 엄앵란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우리는 눈빛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은 내 남자, 내 여자….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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