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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50년 … 쿠바를 가다 <중> 카스트로 동상은 없지만 …





“인터넷 쓰자” 하니 아이는 수갑 시늉 … 물러난 피델의 독재는 아직도
50년 장기집권 … 통제사회 쿠바



쿠바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혁명과 관련된 교육을 다양한 방식으로 한다. 피델과 체 게바라가 정부군과 싸우기 위해 멕시코에서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로 들어오는 장면을 아이들이 재연하고 있다. 이 연극을 보러 수십 명의 주민이 몰렸다. [임주리 기자]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낮 쿠바 아바나. 카리브해의 햇볕이 뜨거웠다. 유명 관광지와 주거지역을 종종걸음으로 다녔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동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보이는 체 게바라에 비하면, 기념엽서에서나 보이는 피델의 모습은 초라할 정도였다. 안토니오 마세오, 호세 마르티 같은 독립영웅들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는 것과도 대조적이었다.



 쿠바와 북한은 반세기 가까이 한 사람이 지배한 사회주의 독재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에는 거대한 김일성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다. 김일성이 살아 있던 1970년대부터 전국에 동상이 세워졌다. 김정일의 동상도 인민무력부 건물 안에 있다. 그래서 쿠바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길에서 핫도그를 팔던 알베르토(55)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델은 위대하지만, 지도자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1인 독재국가에서 우상화가 없단 얘기일까. 이 질문에 북한에서 5년여간 외교관 생활을 했던 호세 아리오사(쿠바영화산업연구소) 교수가 답을 주었다. “쿠바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지배할 수는 있어도 신이 되지는 않는다.”



 정말 그럴까. 외부 전문가의 시각은 달랐다. 김진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중남미 전공)은 “호세 마르티나 체 게바라 등 다른 독립·혁명 영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민의 거부감을 약화시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라서 개인 우상화에 거부감이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의문이 조금씩 풀려갔다. 흥미로운 독재자의 교묘한 통치술이었다. 관공서가 밀집한 베다도 지역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확신할 수 있었다. 각 부처 1층 로비마다 피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드러내놓고 우상화를 하지 않았지만 주민 통제는 철저했다. 신문은 모두 관영이다. 1면에는 늘 피델의 사진이 보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은 거의 끊겨 있다.



 그날 밤 숙소. 민박집 주인 아들에게 인터넷을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수갑 차는 흉내를 내며 “개인이 인터넷을 쓰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실상을 알기 위해 현지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모두 손사래를 쳤다. 귀국한 뒤 스페인에 7년째 거주 중인 쿠바인 빅토르 알바레스(34)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다.



 -쿠바에서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있나.



 “극소수만 제한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이런 통제에 대한 불만은 없나.



 “접속 자체가 안 되니 통제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도 없다.”



 -쿠바에서도 아랍권 같은 민주화 혁명이 가능할까.



 “글쎄, 불가능할 것 같다.”



 - 그래도 국민은 여전히 피델을 사랑하지 않나.



 “정부가 부풀리는 면이 있다. 반정부 감정은 사람들 앞에 쉽게 내놓기 어렵다.”



 이런 불만이 쌓이면서 쿠바인들은 조국을 등진다. 피델 카스트로 집권 이후 지금까지 50년간 100만 명이 미국 등 외국으로 망명했다. 탄압이나 연좌제는 없지만, 이동할 자유와 사업할 자유가 제한돼 있다. 쿠바를 떠나려는 사람은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한 현지인은 “가족 초청을 받아야 (미국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위장결혼을 하기도 한다”며 “이 경우 5000달러 가까이 든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은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데도 학생들에 대한 혁명사상 교육은 계속되고 있었다. 혁명을 겪은 노인세대는 이런 교육에 아직도 열광했다.



 19일 한 초등학교 앞 길거리. “그의 이름은 피델! (Se llama Fidel)”이라는 외침이 들렸다. 쫓아가니 혁명군 복장을 한 아이들이 트럭 위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침 쿠바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가 세상을 떠난 지 116주년 되는 날이라 학생들이 쿠바역사를 연극으로 재연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사람은?” 선생님의 질문에 다시 한번 아이들이 외쳤다. “피델!”



 수십 명의 주민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보냈다. 한 할머니는 “혁명 당시 노래만 들어도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열기가 가라앉은 이날 오후 10시쯤 아바나시 북측 방파제 ‘말레콘’으로 갔다. 시민들이 드럼을 치고 기타를 연주했다. 경찰이 수시로 검문을 했다. “신분증 보여달라”는 경찰의 말에 “왜 그러느냐”고 따지는 이는 없었다.





50년 세습 독재 카스트로 형제









4월 열린 쿠바 공산당 대회에서 라울 카스트로(오른쪽)가 공산당 제1서기로 선출됐다. 그의 형인 피델이 라울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형제 세습’이 시작됐다. [아바나 로이터=뉴시스]



아바나 구시가지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화려한 건물이 있다. 혁명박물관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대통령궁으로 쓰였던 이곳에는 쿠바혁명 자료가 전시돼 있다. 혁명 당시 피델 카스트로(85)와 라울 카스트로(80)가 함께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띈다. 라울 또한 ‘혁명영웅’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피델 카스트로는 공산당 제1서기 겸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다. 김진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인 쿠바에서 최고권력자는 공산당 제1서기이고, 국가평의회 의장은 우리로 치면 행정수반”이라고 말했다. 당과 정부, 군을 통틀어 최고권력자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타고난 연설가’로도 유명하다.









임주리 기자



 라울은 혁명 후 국가평의회부의장·국방장관 등의 요직을 맡아 왔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진 피델을 대신해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에 선출됐다. 올 4월에는 공산당 제1서기 자리에 올랐다. ‘쿠바의 중국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중국의 실용적인 개혁안을 지지한다.



아바나(쿠바)=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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