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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제 식구 감싸기’ 버려야 서예계가 산다







권근영
문화부문 기자




매국노로 비판 받는 이완용(1858∼1926)은 글씨를 잘 썼다.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도 지냈다. 그의 서예가 전해지는데 가격은 민망한 수준이다. 고미술 경매회사인 옥션 단의 김영복 대표는 “찾는 이가 별로 없어 50만∼1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24일 열릴 옥션 단 경매에는 독립운동가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의 글씨가 나온다. 시작가는 3000만원. 도산은 글씨를 잘 쓴 편은 아니다. 글씨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요컨대 서예에서 첫째는 ‘누가’, 둘째는 ‘무엇을’, 그 다음이 ‘어떻게’다.



 김 대표는 “내용도 모르고 서예를 하는 사람이 80%는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술 한 잔 걸치고 흥청망청 한다는 내용의 시라면 행서나 초서로 흘려 쓰는 게 어울리는데, 정색하고 반듯하게 쓰는 식의 불균형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어떻게’에만 빠진 서단(書團)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다.









도산 안창호의 글씨 ‘애기애타(愛己愛他)’. 23.5×32.5㎝. 평소 가슴에 새겼던 좌우명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자’를 단정하게 썼다.



 올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도 똑같은 드러났다. 대상 수상작에서는 오자(誤字)가, 최우수상 수상작에서는 탈자(脫字)가 나왔다. 행사를 주최한 미술협회는 21일 중 재심의를 벌인다. 미술협회 임종현 이사는 “작가라면 원전을 확인하는 게 맞다. 번역본에 나온 대로 틀리게 썼어도 인정한다는 내규를 두고 있다. 다른 공모전도 비슷하다”고 해명했다. 서예대전 한문 부문의 이정도 3차 심사위원장은 “감수위원들이 하는 일이지만, 1년을 기다려 응모하는 공모전인데 오·탈자 때문에 낙선시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라고도 했다.



 서예대전 수상작 논란은 사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 전에도 심사비리 등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하지만 기사화를 망설였다. 궁핍한 서단이 더욱 위축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서예계도 두 손 두 발을 든 고질병을 기사 하나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건 착각이었다. 조형예술로서의 서예의 가능성을 알아본 쪽은 오히려 서단 밖이었다. 문자추상으로 한국 문자예술의 힘을 서구에 떨친 이응노(1904∼89), 24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우환(75), 두 화백은 서예의 잠재력을 무한 확장했다.



 이제 서예계가 답할 때다. 서예는 한국 미술의 뿌리며, 우리 정신의 현현(顯現)이기 때문이다. 서단 내부의 자기합리화나 온정주의는 자신을 더욱 쪼그라뜨릴 뿐이다.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바로서야 한다. 올해는 마침 고려대장경을 만든 지 1000년이 되는 해. 우리는 예부터 문자예술 강국이었다.



권근영 문화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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