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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적은 친구 … 베트남, 미국 끌어들여 중국에 맞선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이 미국을 내세워 중국과 첨예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난사(南沙)군도 영유권 긴장

 19일(현지시간) 베트남 시민 300여 명은 하노이 시내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주권 침해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항의 시위는 매주 일요일마다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중국은 난사(南沙)군도 등 베트남 해역 불법 침범을 중단하라” “중국의 야욕을 분쇄하자”고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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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17일에는 베트남과 미국의 고위 외교 당국자들이 워싱턴에서 회담 후 공동성명을 냈다. 양국은 성명을 통해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을 남중국해의 이해 관계자(stake holder)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얻었다. 군사력으로 남중국해를 독식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왕샹웨이(王向偉)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중국어판 편집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아시아 국가 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될 것”이라며 “중국 지도부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7월 베트남을 방문해 “남중국해에서의 자유로운 항해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라며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인근 필리핀도 남중국해 문제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을 계기로 자국 호위 초계함을 분쟁 해역에 보냈다.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홍콩경제일보는 20일 “중국이 무력을 행사할 경우 두 나라가 핍박받는 약소국의 이미지를 내세워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 이슈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용주의 생존술=베트남은 1960~70년대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300만 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종전 20년 만인 95년 미국과 다시 수교했다. 경제 재건과 중국의 팽창으로 인한 안보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이런 노력은 지난해 양국 연합 해상훈련을 위해 미 해군 항모 조지 워싱턴함이 다낭항에 정박하면서 결실을 보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 7월에도 양국은 남중국해에서 연합 훈련을 계획하는 등 군사적 파트너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베트남의 ‘벼랑 끝 전술’=베트남은 현재 미국·러시아 등의 석유회사들을 끌어들여 남중국해 유전 개발에 나서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베트남이 유전 개발 파트너에 최대 70%의 수익 배분을 보장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중국해 해저에 매장된 석유는 약 230억t 규모로 중국 대륙 전체 매장량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2의 페르시아만’이 바다 밑에 있다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유전 개발에 관한 양국 간 합의가 나오기 전에 베트남이 독자적으로 개발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제갈공명 ‘칠종칠금’ 무대의 땅



역사 속 베트남










19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민 300여 명이 모여 중국의 주권 침해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는 지난 5일부터 매주 일요일 열리고 있다. [하노이 AP=연합뉴스]





외세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베트남의 저항력은 역설적으로 숱한 외세의 침략과 피지배의 역사에서 나왔다.



 베트남은 역대 중국 왕조와의 전쟁을 통해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겪으면서도 독립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맹획과 대결해 ‘칠종칠금(七縱七擒,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이라는 말을 남긴 남만(南蠻) 지역이 지금의 베트남 땅이다. 당나라는 남벌(南伐)군을 보내 베트남을 침략한 후 안남(安南)이라고 불렀다. 안남은 ‘남쪽을 안정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트남은 한족·몽골족·여진족이 중국 땅에 세운 나라에 복속돼 자치를 보장받는 대신 조공을 바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현 국호인 베트남도 청나라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초 원(元)씨 왕조가 국호를 남월(南越)이라고 정하려고 했지만 청나라의 압력으로 월남(越南)으로 국호가 정해졌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월남의 현지어 발음이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1954년 프랑스를 몰아냈다.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베트남은 59년 미국의 통킹만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끝에 통일을 이뤘다. 중국과 국경 마찰을 빚었던 베트남은 79년 중국의 침략을 받아 북쪽 국경에서 전쟁을 벌였다. 88년 3월엔 중국이 기상관측을 이유로 난사군도 6개 섬을 점령하자 5월 양측 해군 간에 교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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