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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11> 연구개발특구의 과거와 현재





자주국방의 꿈서 시작된 대덕 개발, IT한국 이끌고 과학벨트 거점으로





지난 5월 교육과학기술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거점지구로 대전 유성의 신동·둔곡지구를 선정했다. 이곳은 바로 30여 년 전 첫 삽을 뜬 대덕연구단지와 세종시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대덕단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 향상과 경제발전에 기여해 왔다. 기술을 통한 비즈니스 성과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2005년부터 연구단지와 그 주변 지역을 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해 혁신클러스터로 육성 중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로 선정되면서 도약의 기회를 맞은 연구개발특구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봤다.



서경호 기자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통해 방위산업 육성 꾀해









1976년 부산 기계공고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실습생을 격려하고 있다. 박 대통령 왼쪽은 김정렴 비서실장, 오른쪽 끝은 오원철 경제2수석이다. 박 대통령과 김 실장, 오 수석은 1971년 11월10일 청와대 ‘3자 회동’에서 방위산업 육성과 중화학공업화 방침을 결정했다. 결국 이들 3명이 대덕연구단지의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육성에 가장 필요한 기술·기능인력 양성을 위해 공고 등 실업교육을 혁신했다. 지방을 순시할 때면 바쁜 일정을 쪼개 기능공을 양성하는 공업고등학교나 직업훈련소를 자주 찾아 공고생의 어깨를 껴안고 격려하곤 했다. [중앙포토]






1971년 11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



오원철 상공부 광공전(鑛工電) 차관보와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방위산업 추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보고했다. “여하한 병기도 분해하면 부품 상태가 됩니다. 이 부품은 규정된 소재를 사용해 설계도면대로 가공하면 생산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제작된 부품을 조립하면 병기는 완성됩니다.”



당시 남북관계는 준전시상태였다. 68년 북한 무장특공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 100여 명의 무장공비가 1개월 이상 날뛰었던 울진·삼척 침투사건, 69년 미 공군기 격추 사건에 이어 70년에도 간첩·간첩선 침투가 잇따랐다. 이 와중에 미국의 해외 주둔군 감축 방침이 발표됐다. 국가 안보가 흔들리는데 당시 한국군의 장비는 북한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군 장비 현대화에 국가의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한국의 방위산업 건설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나라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 차관보는 국내 기존 시설을 이용해 우리의 기술로 병기 개발을 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질문이 쏟아졌다. “(병기의 정밀도에 필요한) 1/100㎜ 정밀가공이 가능한가?” “당장 병기 개발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지?”



오 차관보는 자신 있게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소총 및 기관총 등 개인화기와 박격포까지는 6개월 정도면 대충 개발을 끝낼 수가 있습니다.”



그가 “각하! 김일성도 이런 식으로 병기 개발을 시작해서 각종 화포는 물론 탱크나 잠수함까지 생산해 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김일성 얘기를 꺼내자 박 대통령의 눈에서 순간 번쩍하고 빛이 나더니 오 차관보를 노려보듯 쏘아보았다.(오원철,『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참조)



박 대통령은 이날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후속조치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빨랐다. 박 대통령은 바로 그 다음날 청와대 비서실에 경제 2수석비서실을 새로 설치하고 오 차관보를 그 책임자로 정식 임명했다. 오 차관보는 회고록에서 “1971년 11월10일은 방위산업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된 역사적인 날”이라며 “방위산업뿐만 아니라 장차 율곡사업(대대적인 한국군 현대화 사업)과 중화학공업화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우리 나라의 공업구조 개편과 산업혁명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현대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중화학공업과 기술·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중화학공업이 방위산업 육성의 근간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급기야 1973년 박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80년대 초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로 요약되는 상위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중화학공업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발표했다. 그 이면에는 물론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박 대통령의 꿈이 있었다.



전문 연구기관 수용할 제2연구단지로 대덕 낙점









연구·생산·비즈니스 기능이 결합된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대전시 유성구 일원 70.4 ㎢ 에 조성됐다. [중앙포토]



우선 전문 연구기관을 세우는 게 시급했다. 당시에는 민간기업이 산업기술 개발의 주역을 담당하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적정기술을 선정하고 도입기술을 소화·개량하는 작업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이런 역할을 대신해줄 만한 ‘기술개발 매개체’가 필요했다. 이런 기관으로 66년 처음 설립된 게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였다. 그러나 KIST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정부는 선박해양연구소·표준연구소·화학연구소·기계금속시험연구소·전자기술연구소 등 주요 산업연구소들을 잇따라 설립했다. 대덕연구단지는 이런 분위기에서 태동됐다. KIST를 중심으로 한 서울 연구단지에 이어 정부가 세운 전문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기관을 수용하려면 제 2 연구단지가 필요했다.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는 회고록에서 “대덕연구단지의 건설은 연구원의 상호접촉기회를 확대해 지적 교류를 증대하고 다분야 간 협동 연구시설의 공동활용과 기술정보의 신속한 교환 등 연구기관 집단화의 장점을 갖춤으로써 기술개발과 투자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제 2 연구단지의 최초 발상은 71년 7월15일 만들어진 ‘연구·교육단지 마스터플랜’이라는 정부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신도시 청사진으로 ‘내일의 한국을 일으킬 세계 수준의 두뇌도시’ ‘직장과 주택을 동일 지역 내에 갖는 뉴타운’ ‘21세기를 지향하는 미래도시’ 등으로 내걸었다. 40년 전 계획이지만 최근 발표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당시 정부는 충남 대덕, 경기 화성, 충북 청원 등 세 곳의 제 2 연구단지 후보지 가운데 대덕을 낙점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덕연구단지의 원래 구상은 ‘연구단지’가 아니라 ‘연구학원도시’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쓰쿠바 연구학원도시가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정부는 73년 ‘연구학원도시건설기본계획’을 확정했지만 예산 지원 부족 등의 이유로 진척이 더뎠다. 76년 박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해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대덕밸리 건설의 지휘봉을 과학기술처에서 오원철 제2 경제수석이 이끄는 중화학공업추진기획단에 넘겼다. 대덕연구학원도시를 대덕전문연구단지로 축소조정하자는 오 수석의 건의를 박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다. 75년 당시 과기처 사무관으로 대덕단지 건설 실무를 맡았던 한기익 전 생명공학연구원 감사는 “애초 계획은 연구기관을 계열별로 배치해 기관 간 협력과 교류, 시설의 공동이용 등을 추진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며 “주거시설도 현재보다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시작된 대덕연구단지 조성은 계획수립 이듬해인 75년부터 단지개발과 연구기관 입주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본격화된다. 75년 원자력연구소 대전분소 기공식에 이어 80년 초까지 표준과학연구원·기계연구원·화학연구원 등이 입주했다. 이어 전자통신연구원(1985)·지질자원연구원(1987) 등이 들어서 대덕은 비로소 과학연구단지로서의 면모를 갖춰 가게 된다. 90년대에는 대림산업(1991)·호남석유화학(1991) 등 민간기관도 입주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92년 사실상의 대덕단지 기반조성이 마무리됐음을 선언하는 대덕연구단지 조성 준공식을 했다. 현재 국립중앙과학관 앞에는 “우리의 미래, 여기서 창조한다”는 내용의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쓴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외환위기 이후 벤처열풍… 최근 과학벨트로 선정



대덕연구단지는 성공사례를 여럿 내놓았다.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의 힘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와 DMB,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DRAM 개발이 대덕에서 나왔다. 한국 최초의 글로벌 신약인 LG의 팩티브, 한국형 핵연료와 원자로,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역량에 비해 비즈니스 기능인 산업·생산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99년 관련법을 개정해 연구단지 내에서도 생산활동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외환위기 이후엔 벤처 열풍이 대덕을 휩쓸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이 세운 벤처기업만 50개가 넘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빗대 ‘대덕밸리’라는 명칭이 일반화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난 5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선정되면서 대덕특구에는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이재구 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이사장은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방안은 현재 대덕-광주-대구특구의 삼각체제로 이루어진 연구개발특구 육성정책과 지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책적 차원에서도 연계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참고서적: 오원철『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 김정렴 『한국경제정책 30년사』, 과학기술부『대덕연구단지 30년사

대덕(大德) 연구단지에서 연구개발특구까지



인프라 조성기(1973~77)

연구기반 확충기(1978~89)

연구성과 창출기(1990~98) : 과학기술 연구성과물

혁신클러스터 형성기(1999~2005) : 대덕밸리 명칭 사용

혁신클러스터 조성 및 준비기(2005~2010) : 대덕연구개발특구

혁신클러스터 도약기(2010~ ) : 연구개발특구 (2011년 광주·대구특구 추가 지정)

대덕특구 면적, 여의도의 8.4배…입주 벤처기업만 1000개 넘어



Q 연구개발특구란 개념이 생소한데.



A “연구개발특구는 한마디로 연구개발 역량이 뛰어나 이를 특화한 지역이다. 오미자·청양 등 특정 상품이나 지역 명칭에서 이름을 딴 상품특구나 지역특구도 있어 헷갈릴 수 있지만 이런 특구와는 다르다. 연구개발특구는 국가적인 혁신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육성하는 혁신 클러스터다.”



Q 혁신 클러스터는 또 뭔가.



A “클러스터는 서로 연계된 기업들과 관련 기관들이 특정 분야에서 서로 협력과 보완관계를 갖고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는 집단을 말한다. 같은 지리적 범주 내에 있어 커뮤니케이션, 물류, 개인 간 상호작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기술혁신의 상징인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혁신 클러스터다. 스탠퍼드대학을 중심으로 9000여 개의 정보통신(IT) 및 바이오(BT) 벤처기업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100대 첨단기업 본사의 20%가 몰려 있다. 중국의 중관촌, 스웨덴의 시스타,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도 새로 부각되고 있는 혁신 클러스터다.”



Q 한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A “혁신 클러스터가 잘 되려면 구성원 간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해 지식이 창출, 확산, 활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런 목적으로 정부는 2005년 대덕특구를 한국형 클러스터로 육성하고 있다. 2011년엔 광주와 대구도 특구로 지정됐다.”



Q 대덕특구를 소개한다면.



A “대덕 특구의 면적은 총 70.4㎢(2130만 평)로 여의도의 8.4배에 달한다. 대전광역시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시 면적의 약 13%를 차지한다. 대전의 북도심부라고 할 수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대전시 유성구·대덕구 일원 32개 법정동을 포괄한다. 2009년 말 기준 대덕특구 내 입주기관은 출연기관 29개, 국·공립기관 14개, 벤처기업 1006개에 달한다. 대덕의 강점은 연구개발 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정부 출연 연구소를 비롯한 공공연구기관과 대학 등이 세계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한 곳에 밀집돼 있다는 것도 커다란 강점이다.”



Q 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A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46조에 따라 2005년 지식경제부 산하에 설립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기술 이전 등의 방식으로 대덕특구에 있는 연구소의 연구성과를 사업화하고 ▶첨단기술기업 육성 ▶전문인력 양성 ▶경영마케팅 지원 등으로 벤처 생태계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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