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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커넥션 코리아





망국의 최고 비용 치르고도
끈질긴 비리의 독버섯
감옥이 넘쳐나도 이번엔
공정사회 기초라도 닦아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고혹적 목소리의 이브 몽탕, 비운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나라 프랑스에서 한국의 젊은 노래가 돌풍을 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늘씬하고 박력 있는 SM타운 아이돌 그룹이 세련된 문화에 이골이 난 유럽 청춘들을 저토록 울릴 줄 누가 꿈이라도 꿨겠는가. 춤, 노래, 연기, 정서를 한데 묶어 전율상품을 생산한 비법은 코리아 커넥션이었다. 북유럽 작곡가의 가락에 미국 안무가가 흥을 돋웠고, 유럽 매니어들이 유튜브와 트위터로 전 세계에 전파했다. 코리아 커넥션은 K팝 돌풍의 발전기였다.



 ‘코리아 커넥션’이 해외에서 매혹과 열광을 쏟아내는 에너지라면, 정작 사회 내부의 커넥션은 한국을 비루와 혐오의 늪에 빠뜨렸다. 이름하여 ‘커넥션 코리아’. 온갖 연고를 총동원해 목적을 이루고야마는 저돌성, 힘없는 ‘을(乙)’들의 십종경기를 느긋이 지켜보는 ‘갑(甲)’의 야비함, 줄 찾는 자와 대는 자들이 내지르는 허망한 교성으로 한국사회는 뻑적지근하다. 연일 터지는 저 부패의 칡넝쿨들이 칭칭 감고 있는 현실을 누가 비켜날 수 있으랴.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연고비리의 축약이고, 국토해양부 건은 관료 부정의 진액이다. 접대, 향응, 뇌물, 줄대기로 짜여진 공사 네트워크 꼭대기에 고위직 권세가들이 버티고 있는 이 전통적 비리연줄망은 망국(亡國)이란 최고의 비용을 치르고도 조선시대 이래 아직도 건재하다.



 18세기 말, 충청도 목천현 수령을 지냈던 황윤석은 파직되어 고향길에 올랐다. 배행했던 향리와 노비가 도망쳐 더 쓸쓸한 낙향이었다. 그런대로 청백리였던 그의 파직 사연은 단순했다. 암행어사 감찰에 미움을 산 것이다. 어사는 관아를 스치듯 상경했고 대신 부관이 염문차 고을을 돌아다녔다. 황윤석은 눈치를 챘지만 뇌물을 주지 않았다. 화가 난 부관은 어사에게 무능과 부패상을 보고했고, 그대로 채택됐다. 낙향길에 황윤석은 줄 만들기에 소홀했던 자신을 탓했다. 어사는 정조의 환심을 산 세력가 심환지였다. 지방의 사족들은 서울의 고관대작과 커넥션을 만들려고 정기적으로 한양길에 오른다. 수백 냥 노잣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과거 출제자가 될지도 모르고, 향리들의 모함에서 집안을 구해줄지도 모른다. 커넥션은 역사를 뚫고 존속된 이 땅의 정치적 보험이었다.



 강산이 수십 번 바뀐 이백 년 세월을 보란 듯 살아남은 그 커넥션은 21세기 한국에 상동구조의 비리사건을 알 까듯 새끼를 쳤다. 푸릇한 새싹을 돋아냈던 5월, 6월에 줄잡아 십여 개의 부정커넥션이 적발돼 독한 냄새를 풍겼다. 모두 힘있는 자들의 합창이거나, 힘을 얻으려는 자들의 아리아였다. 어사와 감사가 뇌물커넥션의 종착역이었듯, 대한민국의 감찰기관들이 연루된 사건도 여럿 드러났다. 평균 3.5명이면 타깃에 닿는다는 한국의 고밀도 연줄망에서 연고(緣故)와 안면(顔面)의 활차가 윙윙거리며 위력을 발휘했다. 고학력, 전문직, 상위 계층이라면 타깃과의 거리는 더욱 좁혀지고, 그렇게 맺어진 연(緣)은 파워커넥션으로 발전해 초대형 비리를 만들었고, 또 기획 중이다. 노점상, 파출부 십수 년과 바꾼 피 같은 돈을 떼여 실신한 풍경과 백골징포로 유랑하는 농민, 비리커넥션의 비용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 몫이었던 게 ‘커넥션 코리아’의 비극이다.



 “나라가 온통 썩었다!” 썩은 나라 수장이 발한 이 비탄의 포유문을 현장을 누비는 1만 명의 감사요원들이 비수처럼 품고 다니기를, 감옥이 넘쳐나도, 정권 하반기에 제발 공정사회의 기초라도 닦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수천 명이 죽어도 마약과의 전쟁이 더 치열해지는 멕시코처럼, 커넥션을 치부(致富)와 영달의 최선의 방책으로 좇는 오랜 마음의 습관을 버리는 게 먼저다. 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한국의 성인 40% 중 상부상조를 열창하는 동창회, 동향회, 종친회 등 연고단체가 6할을 넘고, 3할은 여가, 종교단체다. 시민단체는 고작 1할 정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연고를 부여잡고 매진한 게 한국이다. 동성부락이 미속이 아니다. 기우는 문중세력이 모여서 도모한 결과다. 이참에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그렇게 집착해온 고밀도 연줄망은 왜 끈질긴 비리의 독버섯을 지천으로 키웠는지를. 사적 연줄망으로 공적 자원을 노리는 나라에서 모든 ‘만남’은 수단적이다. 사람을 아는 것, 교우(交友)란 윤리적 각성을 나누는 일이라 했다. ‘제2의 나’를 찾아 덕행을 주고받는 것이 교우의 도(道)다. 황윤석은 쓰렸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때, 규장각 사서 이덕무가 ‘교우론’을 갈파했다. “수려한 기운이 없으면 죽은 교우다. 어찌 썩고 냄새 나는 것들과 발꿈치를 접하랴!”고. 학덕이 높았던 이덕무도 수령직을 끝으로 낙향했다. 정조가 죽고 19세기가 시작되자 썩고 냄새 나는 커넥션이 온 산하를 덮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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