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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36) 두수와 요안나




영화 ‘맨발의 청춘’(1964). 승마 복장의 요안나가 두수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애원하는 장면이다.


시간이 없어서 어떤 일을 못한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모든 일은 절박한 상황에서 이뤄진다.

‘맨발의 청춘’(1964)은 장고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었다. 촬영 기간은 불과 18일. 일정이 매우 촉박했지만 보기 드문 흥행작이 됐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보는/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첫 장면부터 짙은 페이소스가 풍기는 가수 최희준의 저음은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대의 감성에 호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탁월함이 있었다. 지금도 뒷골목 청년 두수(신성일)와 천사 같은 상류층 딸 요안나(엄앵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촬영은 변칙적으로 진행됐다. 편집을 잘 하는 김기덕 감독은 촬영 중반부턴 아예 녹음실에 틀어박혔다. 현장에서 찍어서 녹음실로 보내면 녹음실에서 편집해가며 녹음을 했다. 조감독 고영남과 나·엄앵란 셋이 현장을 만들다시피 했다.

 나와 엄앵란·트위스트 김은 상황마다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여러 명의 위트·열정· 패기가 감각적인 액션을 만들어냈다. 난 그때 엄앵란의 순발력에 놀랐다. 액션에 관한 한, 내가 현장감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울분에 찬 두수가 휘두르는 주먹에 아우 아가리(트위스트 김)가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어떠했나. 나는 영화출연이 처음인 트위스트 김에게 쓰러지는 동작을 세밀하게 가르쳤다.

 “오른손이야. 고개 왼쪽으로 돌아!”

 동시녹음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 장면부터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발을 테이블에 걸치고 찻잔은 무릎 위에 얹은 반항적인 두수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나는 완전히 힘을 빼고 연기를 했다. 배우들이 판에 박은 연기를 하도록 지시하는 유현목·김기영 감독의 영화 같았으면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배우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지론을 가진 신상옥 감독 밑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것이 나로선 행운이었다. 액션에 능한 나는 이미 카메라 앵글을 꿰뚫고 있었고, 청춘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감독들이 나를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유일한 배우로 성장해갔다.

 ‘두수’라는 주인공 이름도 내가 지었다. 차태진 극동흥업 사장과 김 감독은 주인공 이름을 짓지 못해 고심했다. 두수의 모델은 당시 김두수 우석대 재단이사장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멋쟁이로 여겼던, 이탈리아 배우 안소니 퀸과 닮은 분이었다. 갑자기 김두수씨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형, ‘맨발의 청춘’에 형 이름 써도 괜찮아?”

 “나야 좋지.”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두수는 아무리 봐도 뒷골목 이름으로 어울렸다. ‘요안나’란 이름은 세례명이다. 때 묻지 않은 고귀한 이름으로 뒷골목 사나이 두수와의 신분 격차를 벌리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방앗간에서 손을 꼭 잡고 자살했을 때 감동이 커졌다.

 트위스트 김이 눈길 위에서 울면서 두수의 시신을 실은 리어카를 끄는 엔딩 장면에도 재미난 사연이 숨어있다. 촬영팀은 눈을 찾아 대관령으로 떠났다. 거적에 덮인 발만 찍는 데 내가 갈 필요는 없었다. 카메라에 잡힌 두수의 맨발은 제2 조감독의 발이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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