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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분단의 현상유지냐, 통일로의 변화추구냐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6월이 오면 한국인은 전쟁과 평화, 그리고 분단과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0년 전의 6·25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통일의 전망은 불투명하며 근래에는 미묘하고 불길한 징조가 남북관계를 비틀고 있어 딱하고 답답할 뿐이다. 광복을 기다리며 36년, 통일을 기다리며 66년, 그렇게 우리는 한 세기를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참고 견디는 인내가 체질화된 지 이미 오래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분단과 대결의 기본성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 및 정책을 다듬어가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예부터 이익이나 권력이 충돌하는 상황을 보면 현상유지를 원하는 쪽과 변화를 바라는 쪽으로 갈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에서의 남북 대립관계 역시 그 틀 안에 묶여 있다. 지금의 분단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인 데 비해 우리 한국의 정책목표는 이를 통일로 향하여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남북 양쪽은 각기 자기 주도의 통일을 최선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변화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어진 상황을 유지할 것인지, 혹은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는 그때마다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른 선택일 수밖에 없다. 1950년 6월 남침을 자행했던 북한의 시도는 분명 그들 주도의 무력통일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북한이 지금에 와서는 왜 분단의 현상유지를 원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집권왕조가 정권안보를 국가안보로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무수한 사례를 보아왔다. 지금의 북한은 바로 그 함정에 빠져 있다. 90년대 초, 동서냉전의 막이 내려가던 그때 북한도 마땅히 체제 조정의 기회를 활용했어야만 했다. 중국의 새 지도자 덩샤오핑의 개방 및 시장경제 선택이란 결단을 보면서도 천하대세를 읽지 못하였다면 체제안보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실 1990년대 초의 북한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에 전적으로 둔감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민주화를 성취하고 동서화합의 상징인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이 평화통일로 향한 이정표가 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국민적 합의로 채택하였을 때 북한은 이에 호응하는 듯한 일련의 긍정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90년부터 여덟 차례의 남북 고위급회담이 개최돼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92년 2월에 발효되었다. 또한 91년 남북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되면서 분단의 현상유지가 아닌 통일로의 변화를 함께 추구하는 민족의 슬기로움을 보여주는 듯싶었는데 왜 그 장밋빛 가능성은 몇 걸음 못 가고 사라져 버렸는가.

 아마도 변화와 그 대가에 대한 공포가 북한의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 성공적으로 건설한 극단적 전체주의체제의 성격이 스스로의 변화능력을 마비시키고 만 것이다. 더욱이 그런 제약 속에서도 끝까지 탈출구를 모색하던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은 남북이 함께 추구하려던 통일로의 변화를 일단 소산시켜 버렸다. 한편 군사력을 핵심으로 한 강성권력(hard power)보다는 경제력과 문화적 창의력이 이끄는 연성권력(soft power)이 세력판도를 좌우하게 되는 냉전 후의 상황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 강화에 외곬으로 매달려 버린 결과는 남북 간 실력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 한 예로 반기문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과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가 대조적인 위상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열세에 빠져버린 북한으로서는 위험한 분단과 대결의 현상유지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통일의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얽혀 있는 중국과 미국도 변화추구에 소극적인 자세로 현상유지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중국 스스로는 초강대국화를 목표로 지속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한반도의 분단상황은 현상유지 쪽이 무난하다는 입장이다. 중동사태 등 국내외에서 난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도 한반도에서의 변화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분단의 영구화를 한사코 거부하며 통일로의 변화추구를 선도할 무거운 짐은 우리 한국의 어깨에 놓여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되짚어 볼 때, 우리 국민은 이 역사적 임무를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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