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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자식교육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는 “옛날에는 어린이에게 속이지 않는 것(不<8A91>)을 가르치고 6세에는 수(數)와 방위(方位)를 가르치고, 10세에는 소학(小學)에 들어가 글과 셈을 배우고 20세에는 관례(冠禮)를 하고 비로소 선왕(先王)의 도를 익혔다. 그래서 능히 그 덕(德)을 이룬 뒤에 일을 맡겼다”고 전한다. 어린아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속이지 않는 정직한 마음이었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야 숫자를 가르치고 방위를 가르쳤다.

 지금 사람 못지않게 옛 사람들도 자식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가장 좋은 교육이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남북조 시대 진(晉)나라 정승인 사안(謝安)은 자식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교육에 무관심한 남편’ 대신 자식들을 가르치던 부인이 사안에게 “왜 당신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까?(不見君敎兒)”라고 물었다. 사안은 “나는 늘 일상에서 자연스레 자식들을 가르치고 있소(我常自敎兒)”라고 답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편에 전하는 이 이야기는 가장 훌륭한 교육방법의 하나로 손꼽힌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유배 가 있으면서 자식들과 떨어져 있었기에 모범을 보일 수도 없었다. 자식 교육을 고민하던 정약용은 『고시24수(古詩二十四首)』에서 “자식 교육을 마땅히 어떻게 할 것인가/근근이 편지나 써 가르치는 것으로 족할 수밖에 없네(敎子當何如/僅足通書啓)”라고 토로했다. 유배지의 정약용이 편지 교육으로 자식들에게 강조한 것은 첫째도 독서, 둘째도 독서였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寄二兒)』에서 “폐족으로서 잘 처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이르느냐 하면 오직 독서하는 한 가지일 뿐이다. 독서는 인간의 제일가는 깨끗한 일로서, 부호나 권세가의 자제들에게는 그 맛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억∼100억원까지의 주식을 소유한 만 12세 이하 어린이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훗날 『대한민국사』 『식화지(食貨志)』에는, “어린아이에게 물려받은 돈 세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고 써야 할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신분제 인식이 커지면 사회 양극화는 체제 부정으로 가게 되어 있다. 사회적 동의를 상실한 부(富)가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 역사적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서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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