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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더 뮤지컬 어워즈’] 남녀주연상 영광의 얼굴




남녀주연상을 각각 받은 조승우(왼쪽)와 차지연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조승우는 노래와 연기의 완벽한 조화로 국내 뮤지컬계를 재평정했다. 오랜 역경 끝에 정상에 오른 차지연도 그의 시대를 예고했다.



한층 원숙해진 ‘조지킬’ 왕관 돌려받다

남우주연상 조승우


“군대에 있는 동안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뮤지컬 지존’ 조승우의 수상 소감은 ‘고백’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군대 가기 직전 영화도 뮤지컬에도 이상하게 의지가 없어졌던 게 사실”이라 했다. 그러던 중 “뮤지컬의 ‘뮤’자만 들어도 설렌다”는 배우 홍광호를 만났다. “아, 나도 저랬지. 나도 고등학생 시절 ‘미친 놈’ 소리 좀 들었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무대가 그리웠습니다. 지난해 이 자리에서 전경으로서 경찰 뮤지컬에 서면서도 어딘가 그리웠습니다.”

 그를 이 자리에 세운 것은 이 갈증이었다. 지난해 제대한 조승우는 2004년부터 출연했던 ‘지킬 앤 하이드’를 복귀작으로 선택했다. 2년 만에 무대를 다시 만난 그는 소름 끼치는 몰입으로 폭발했다.

팬들의 갈증도 동시에 풀어졌다. 돌아온 ‘조지킬’은 원숙해진 연기로 이번 심사위원 7인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 2008년 ‘맨 오브 라만차’로 받은 남우주연상을 되찾아왔다. “예전과는 이 역할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좀 더 논리적으로 풀어내겠다”던 약속을 지킨 덕이다.

 조승우는 ‘지킬 앤 하이드’를 “나를 세상으로 나가도록 등 떠밀어준 작품. 인생의 전환점이다”라 일컫는다.

지난달 7일 ‘지킬 앤 하이드’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그는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제대할 때 체중이 65㎏이었는데 이젠 59㎏이다. 여러분의 응원이 있어 달려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나온 ‘조지킬’ 은 한국 뮤지컬 역사를 새로 썼다. 자신이 나온 72회 공연을 매진시켰다. 매진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았다.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관객 동원력이다.

공연은 다섯 달 만에 100억원 순수익을 쌓았다. 결국 199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한 이래 이렇다 할 수익을 올리지 못했던 ‘지킬 앤 하이드’는 한국에서 대형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내겐 확신만이 있을 뿐/남은 건 이제 승리뿐”이라 노래하는 ‘지금 이 순간’은 지킬도 하이드도 아닌 ‘조지킬’을 위한 외침으로 들렸다. 지킬과 하이드라는 극단의 캐릭터로 인간 본성을 탐험한 그는 11월 막을 올리는 ‘조로’를 차기작으로 예고하고 있다. 귀족 가문의 아들, 방탕한 한량, 귀환하는 영웅 캐릭터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다.

 트로피를 쥔 조승우는 “제대 후 5일 만에 중앙일보 기사에서 내 고액의 개런티가 밝혀져 당혹스러웠지만 받는 만큼 제 값 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이제껏 라이선스 작품에만 치중해 순수 창작 작품을 많이 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 필요성이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한국 창작의 발전을 빈다”고도 덧붙였다. ‘뮤지컬의 왕’ 은 이렇게 한 뼘 자라서 돌아왔다.

‘소녀가장’ 10년 딛고 마침내 여왕

여우주연상 차지연


새 천년의 첫 십 년은 배우 차지연(29)에게 가혹한 시간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소녀 가장’ 노릇을 해야 했고, 가수의 꿈도 좌절됐다. 2006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야 희망의 빛 줄기가 겨우 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새 천년의 두 번째 십 년은 ‘차지연의 시대’로 그 서막을 알리게 됐다.

 차지연이 제5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들려준 서늘한 한(恨)의 소리가 관객의 마음을 제대로 훔쳐냈다. 2009년부터 세 번 연속 후보에 오른 끝에 올라선 정상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뮤지컬이란 장르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관객을 섬기는 겸손한 배우로 살겠다”며 울먹였다.

  채 서른이 안 됐지만, 그의 삶은 유독 굴곡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음악은 친근했다. 외할아버지가 판소리 인간문화재 고(故) 박오용(1926~91) 옹이다. 세 살 때부터 북을 두들겼고, 장구·징·꽹과리 등을 익혔다. 거문고·가야금과 창도 배웠다. ‘국악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소리도 곧잘 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삶이 확 꺾였다.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냈다. 대전에 살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는 여섯 살 터울 여동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단칸방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겨운 일상을 견뎠다.

  하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각종 신인 가요제에서 1등을 차지하며 가수 데뷔를 꿈꿨다. 그러나 끝내 음반은 못 냈다. 대신 가수 준비를 하며 쌓았던 음악적 역량을 뮤지컬에다 쏟아냈다.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에서 못난이 에피 역을 맛깔 나게 소화했다. 특히 15㎏을 찌워가며 연기에 혼신을 다하는 모습아 화제가 됐다. 지난해 ‘몬테크리스토’에서도 비련의 여주인공 메르세데스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존재감을 입증했다.

  무엇보다 폭발력 넘치는 가창력이 매력적이다. 미성에 가까운 중저음과 쇳소리가 매력적인 고음이 어울리는 목소리는 관객의 심장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최근엔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의 피처링을 맡아 자신만의 보컬 매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는 유독 한이 많은 여주인공 역을 자주 맡아왔다. 성공을 향해 꿋꿋이 걸어가는 ‘드림걸즈’의 에피가 그랬고, 남자 주인공을 향한 짙은 그리움에 젖어있는 ‘몬테크리스토’의 메르세데스가 그랬다. ‘서편제’의 송화 역은 그 정점이었다. 소리에서 한이 묻어나는 송화는 10년 가까이 굴곡진 삶과 분투해온 그와 닮아 있었다. 특히 어려서 익힌 국악이 탄탄한 밑바탕이 됐다. 그는 “삶 자체가 소리인 송화와 음악과 더불어 살아온 나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은 굴곡진 삶에 맞서며 온갖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차지연 노래 인생에 대한 보답이다.


시상식 말말말





▶“오늘 축제여야 하는데 제 마음은 무겁습니다. 오늘 제가 입은 수트는 조왕연 대표 장례식장에서 입었던 상복입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극본상 ‘서편제’ 조광화, 지난달 숨진 고 조왕연 대표를 기리며.

▶“작년에 제 와이프가 극본상 후보에 올랐다 떨어졌어요. 그날 소주 10병 마시면서 내년에 꼭 작품상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켜서 기분이 좋습니다.”

-‘왕세자 실종사건’ 서재형 연출, 소극장 창작 뮤지컬상 수상 소감에서.

▶“다른 신문사에서 주는 상에선 안 울었는데 왜 울죠? 중앙일보 짱!”

-여우조연상 ‘빌리 엘리어트’ 정영주, 수상 뒤 눈물을 훔치면서.

▶“수상 소감은 제 키만큼 짧게 하겠습니다. 스물 일곱 늦은 나이에 무작정 뮤지컬에 뛰어들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더 뛰고 구르고 처박히고 넘어지겠습니다.”

-남우조연상 ‘톡식 히어로’ 임기홍, 수상 소감에서.

▶“오늘은 수상소감을 전지에 준비했습니다. 못 받으면 아내 앞에 가서 읽으려고요.”

-남우주연상 후보 정성화, 지난해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을 종이에 써온 것을 기억하며.


본심 심사위원단(가나다순)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심재찬 국립극단 사무국장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학과 교수
이종훈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조용신 뮤지컬 컬럼니스트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
황인뢰 드라마PD


◆특별취재팀

문화스포츠 부문=최민우·이경희·정강현·김호정 기자
영상부문=양광삼·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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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