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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33) 복싱영화 두 편




신성일 주연의 영화 ‘가정교사’(1963). 신성일(가운데)은 이 시기에 ‘청춘교실’ ‘가슴에 꿈은 가득히’ 등으로 청춘영화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인기 스포츠는 언제나 영화의 주된 소재다. 1960년대는 농구·권투·레슬링·야구의 시대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두 편의 권투영화 ‘가슴에 꿈은 가득히’(1963)와 ‘오늘은 왕’(1966)에 출연했다. 영화를 찍으면 두들겨 맞은 기억이 난다.

 63년 2월 서울 장충체육관이 건립되면서 실내 스포츠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전까지는 서울운동장 야구장 홈베이스 쪽에 링을 만들거나 수영장에 무대를 설치해 권투 경기를 열었다. 농구는 박신자, 권투는 강세철·서강일·김기수, 레슬링은 김일 같은 스타를 배출해 인기몰이를 해나갔다. 고교·실업야구에선 유백만이 떠오르는 별이었다.

 장충체육관의 스케줄이 빡빡할 땐 인근 장충공원에 링이 설치됐다. 레슬링 열혈팬인 아내 엄앵란은 64년 결혼 후에도 아기를 데리고 장충공원을 찾곤 했다. 장영철·김일·천기덕 등이 링에 오르면 그렇게 좋아했다. 링 위가 아수라장이 되면 아내는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사람 죽인다, 사람 죽여~.”

 주최 측으로선 얼마나 고마웠을까. 장내 아나운서는 기다렸다는 듯 “엄앵란씨, 좀 조용히 하세요”라고 경고 코멘트를 날렸다. 그러면 구경꾼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개싸움도 장충공원의 인기 이벤트였다. 아내는 개싸움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결혼 후 아기를 기르며 살던 무료함을 달랬던 것이다. 아내가 그 동네를 좋아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장충체육관 인근에 태극당 빵집 장충동 분점과 족발거리가 들어섰다. 결혼 후 이태원 182번지에 집을 얻은 나는 젖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촬영에서 돌아올 땐 장충동 족발을 사다 주었다.

 내가 권투영화 주인공을 맡게 된 데는 두 편의 외화가 영향을 미쳤다.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한 ‘챔피언’,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49전 전승을 거둔 록키 마르시아노를 그린 폴 뉴먼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이 두 영화는 권투 장면이 실감나고 감동적이었다. 슬로모션으로 주인공 얼굴이 찌그러지고 피가 터지는데, 박진감이 철철 넘쳐 흘렀다. 미국은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메커니즘이 있었지만 우리는 없었다. 때리는 장면은 화면을 거꾸로 돌리는 리와인드 장치를 사용하면 훨씬 실감난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그땐 넘을 수 없는 한계였다.

 복싱장면을 찍으려면 정말로 때리고 맞아야 했다. ‘가슴에 꿈은 가득히’는 명보극장에서 을지로 쪽으로 가는 길에 있던 한국체육관에서 촬영했다. 권투·역도·보디빌딩 등에서 나름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었다. 권투 연습생 출신이 내 상대역으로 나왔다. 나도 많이 맞기는 했지만, 내가 챔피언이 되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더 맞은 것 같다.

 장충체육관을 빌려서 촬영한 ‘오늘은 왕’ 때는 내 매니저와 싸웠다. 매니저는 권투 선수 출신인데다 나와 키가 비슷했다. 내가 마음껏 때리는 바람에 매니저의 코에서 코피가 났다. 슬슬 열이 오른 매니저가 진짜 실력을 보였고, 나는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아침이면 장소를 비워주어야 했기에 우리는 밤샘 촬영을 했다.

 권투영화에선 실컷 얻어맞기만 했다. 외화의 실감나는 권투 장면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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