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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첫 한국계 주한 미 대사의 처신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북한이 처음으로 핵실험을 한 다음날인 2006년 10월 9일 아침(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존스홉킨스대 케니홀은 한국 기자들로 붐볐다. 미국의 북핵정책 책임자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대책을 캐묻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강연을 마친 힐 차관보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그를 에워쌌다.

그 순간 “Step Back(물러서세요)!”이라며 제지하고나선 여성이 있었다. 힐 차관보가 보좌관으로 중용한 한국계 미국학자 발비나 황이었다. 감정이 상한 한 한국기자가 그에게 “한국의 높은 사람들에겐 한국말로 하더니 왜 여기선 영어를 쓰느냐”고 쏘아붙였다. 미국 정부 공직자가 공적인 상황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발비나 황은 한국계란 이유 때문에 부당한 항의를 받은 셈이다.

 이처럼 한국계 미국인 공직자가 한국인들을 만나면 문화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계 미국인 공직자는 자신을 100% 미국인으로 여긴다. 이는 그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가 ‘국적만 미국인’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마찰이 빚어진다.

 한·미수교 사상 처음으로 한국계 미국인인 성 김 미 6자회담 특사가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됐다. 유달리 한 핏줄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그의 대사 내정을 반기고 있다. 고심끝에 나온 미국의 선택이 일단은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부담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 주한 미 대사는 한때는 ‘총독’ 소리를 들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이다. 미국을 비판하기 여념없는 야당 거물 정치인조차 미 대사관 만찬에 초청받으면 기꺼이 응해 대사 옆자리에 앉으려 한다. 미 대사와 친구 트기를 원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 고위층에 차고 넘친다. 미 국무부 관리들 사이에서 주한 미 대사가 물 좋은 보직의 하나로 꼽히는 건 그런 자력(滋力) 때문이다.

 김 내정자가 부임하면 그와 사이를 트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김 내정자에게는 좋은 기회다. 반면 그럴수록 그가 뜻하지 않은 오해로 섭섭함을 사거나 구설에 오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김 내정자가 ‘처신’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의 관계설정도 주의할 점이다. 그의 대사 내정설이 돌자 과거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아온 외교부 당국자들은 환영의 뜻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고위층으로 올라가면 반응이 좀 달랐다. “유능한 친구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한 차례 대사를 지내고 왔으면 좋겠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공서열을 따지는 우리 풍토에서 그동안 후배 외교관으로 대해온 김 내정자를 ‘미 대통령 특명 전권 주한 대사’로 대우해야 한다는 현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속내가 드러난 얘기였다.

김 내정자가 한국 공직 사회의 이런 정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 외교관으로서 직분에 충실하되 한국의 덕목인 ‘겸손’에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할 성싶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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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