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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정치하기 쉬운 나라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민생, 전관예우 타파, 부패척결 등
좌우와 무관한 과제들을 이념화해
정치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기업 하기 쉬운 나라가 있고 어려운 나라가 있다. 정부가 어떤 환경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비즈니스 활동으로 이익을 내기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따지는 것처럼 정치하기 쉬운 나라와 어려운 나라도 나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정치하기 쉬운 나라일까 어려운 나라일까.

 정치하기 쉽고 어려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좌우 이념 구도다. 좌우의 정치를 초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의 문제는 무엇보다 좌파·우파 이념의 문제다. 최근 선거에서 포르투갈은 중도 우파가, 페루는 좌파가 승리했다. 남의 나라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지구촌 세계인들이 우선 따지게 되는 것은 좌파·우파·중도좌파·중도우파 중 어느 쪽이 승리했느냐다.

 현 한국 정치는 좌파·우파로 양극화된 것처럼 보인다. 실상을 들여다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는 정치인들이 좌우를 초월한 정치를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좌우를 떠나 선결해야 할 과제들을 해결했다. 역대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들을 보자. 금융실명제, 남북대화, 대외 무역 확대, IT산업 진흥, 돈 안 드는 선거 풍토 확립, 문민 정부 확립, 북방정책, 인권 신장, 남녀 평등 등 각종 평등을 위한 조치, 지방자치, 지식경제 진흥… 모두 정파를 초월해 응당 해야 할 일들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이념의 좌우 축(軸)뿐만 아니라 다른 축들까지 끼어들어 정치를 어렵게 했다. 정치학자들도 좌우 축만으로는 복잡한 정치 이념과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며 ‘개인-공동체’와 같은 축을 추가하기도 했다. 종교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가 정치에서 별도의 축을 형성하거나 좌우 이념 축에 끼어들기도 했다. 미국만 해도 산아제한, 사형제, 진화론, 자유와 평등, 동성연애, 자유 무역과 보호무역주의 등의 사안들이 정치를 어렵게 해왔다.

 좌·우의 정치는 정치 사이클이 끼어들면서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된다. 미국 사학자 아서 슐레징거(1888~1965)에 따르면 대략 15년 주기로 미국 정치를 좌우하는 시대 정신(spirit of the times)이 교체된다. 슐레징거에 따르면 시대 정신은 크게 보수와 진보로 나뉜다. 시대 정신은 어젠다 확립, 자원 동원, 정책 수행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시대 정신으로 교체된다. 시대 정신은 집권 정당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 정신이 진보면 공화당 집권기에도 진보적인 정치를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수의 시대 정신이 계속되면 민주당 집권기에도 정책이 보수 기조를 유지한다.

 우리나라 정치도 은연 중에 미국식 좌우 정치 사이클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정부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서 집권 여당의 이념과 다른 정책이 나오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좌파가 집권하면 좌파 이념에 충실한 정책을 펴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 이념에 충실한 정책을 펴면 될 것 같지만 집권 정당의 이념이 아니라 시대 정신에 맞출 필요도 있다.

 좌우 이념의 정치가 우리 정치에 정착함에 따라 정치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고 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의 목록만 보면 아직 우리나라에서 정치하기는 쉽다. 정부와 정당이 해결해야 할 현안을 들여다 보자. 선진 입국, 통일, 민생, 복지, 전관예우 타파, 일자리 창출, 부패 척결… 모두 좌우를 초월한 문제들이다. 이들 문제를 이념화하는 것은 국민과 정치인들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정치하기 쉬운 나라인 이유는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는 국민 덕분이다. 새로운 산업 부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우수한 관료집단도 있다. 좌우 갈등이 현실이 문제라기보다는 지각(知覺)의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 정치의 시대 이념은 왼쪽·오른쪽 중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본격적으로 요구되기 전에 좌우를 초월한 선결 과제에 집중하자.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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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