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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탐사] ‘공정사회’는 기이한 괴물




박보균
편집인


‘공정사회’는 기이(奇異)한 단어다. 대통령의 언어가 되면 생명력을 갖는다. 가치와 지향, 집단 소망을 투사(投射)하기 때문이다. 말이 씨가 되는 마법의 이치와 같다. 공정사회 구호는 살아 숨쉬게 된다. 괴물로 변신한다.

 공정사회는 대중에게 환상을 심는다. 정권의 인기가 올라간다. 그러나 공정사회는 허상이다. 5년의 짧은 임기 대통령이 감당하기 힘들다. 대중은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때부터 그 말은 대중의 분노와 야유를 촉발한다. 환상과 배신감은 괴물의 영양분이다.

 이명박(MB) 정권은 공정사회를 깃발로 내걸었다. 친(親)서민에 그 말을 묶어 짜릿한 정치적 흥행을 맛봤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움직인다. 공정사회는 부담으로 거칠게 작동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비리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서민의 아픔을 통렬하게 자아내고 있다. 그 비리는 10년에 걸친 탐욕의 추악한 드라마다. 김대중(DJ)·노무현 그리고 MB정권이 그 부패에 얽혀 있다. 권력과 결탁, 정책적 비호, 거액의 뇌물 로비가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비리 규모는 수조원대다. 뇌물 액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검찰은 추정한다. 금융감독원·감사원이 비리의 무대에 대거 출동했다. 학연·출신·경력의 연고주의 타락도 추잡하게 드러난다.

 DJ와 노 정권 아래서 부산저축은행의 몸집은 기형적으로 커졌다.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바뀌고 감시 규제가 풀린다. ‘은행’ 간판은 이미지를 개선시켜줬다. 서민금융 활성화 명분이다. 정부 표창도 받았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 은행 경영진은 이자를 더 준다며 서민을 유혹했다. 비리는 악성 진화한다. 서민은 돈을 떼인다. 고객이 못 찾는 돈은 2260억원 규모다. 경영진은 서민 돈을 끌어당겨 호화 호식했다.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 박형선의 행태는 사건의 주목도를 높인다.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권의 대부다. 검찰은 그를 비리의 몸통으로 규정한다. 그의 솜씨는 학교·출신·민주화 경력의 인연을 로비의 사슬로 엮었다.

 MB정권 등장으로 저축은행들의 형편없는 부실이 드러난다. 저축은행 경영진은 MB정권 실력자들에게 구명 로비를 했다. 살아남기 위한 청탁이다. 뇌물 로비 담당자는 윤여성·박태규다. 감사위원 은진수는 뇌물에 넘어갔고 금감원장 시절 김종창의 의혹은 충격적이다.

 ‘공정사회’는 대중을 격동시킨다. 그 말에 익숙해진 대중의 반응은 간결하다. 부패·불공정에 대한 명쾌하고 직설적인 응징을 희구한다. 공정사회라는 괴물은 절묘한 실천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축은행 부패는 그 결정판이다.

 하지만 MB의 청와대 자세는 강렬하지 않다. 대검 중수부의 존폐 논란은 그 때문이다. 청와대는 뒤늦게 폐지 반대에 나섰다. 하지만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없애자는 쪽이다. 그런 혼선은 MB의 의지가 제대로 표출되지 않아서다. 저축은행 부패의 장막을 부수려는 MB의 결연함은 어느 정도인가.

 김황식 총리의 실질 없는 국회 답변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 총리는 저축은행 감사 때 “오만 군데서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만 군데를 이렇게 해명한다. “감사 저항세력이 행하는 어필 또는 청탁을 포괄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동원한 어휘는 현란했지만 구체성이 없다. 따라서 설득력은 미약하다. 공정사회는 대통령의 비장함을 요구한다. 그 같은 장렬함이 뚜렷하지 않으니 난조(亂調)현상이 생긴다.

 부패의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그로 인한 정권 불신, 지도층에 대한 반감, 서민 좌절, 사회 갈등은 치유하기 어렵다. 민주화·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의 지도층 부패는 불치병 상태다. 부패는 자연재해보다 치명적인 재앙이다.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의 장애물이다.

 이 대통령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해외 원전 수주는 그의 업적이다. T-50 고등훈련기 수출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국정 우선순위는 저축은행의 거대한 비리 파헤치기다. 부패청산이 그런 일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성취다. 서민의 분노를 풀어주고 공정사회의 진정성을 과시해야 한다. DJ·노·MB정권, 여야 가리지 말고 비리의 모든 연루자와 부패의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

 MB정권은 기로다. 저축은행 비리의 척결이 성공의 요체다. 공정사회는 괴물이 돼버렸다. 그 깃발에 부응하지 않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괴물을 통제하기 힘들어진다. 공정사회는 부메랑이 된다. 허망한 결말을 맞는다.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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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