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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24) 우리금융지주 회사 출범




국내 첫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가 2001년 4월 2일 서울 회현동 한빛은행 본점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윤병철 초대 회장(가운데)이 지주회사 깃발을 흔들고 있다.


“윤 회장, 금융지주회사 운영에 대해 금융계 원로의 고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시간 한번 내주시오.”

 2001년 2월 22일 아침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미국 CFP평의회의 산하기구인 국제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짐을 꾸리다가 생명보험협회 배찬병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정부가 한빛은행을 비롯한 몇몇 부실은행과 종합금융회사를 한데 묶어 금융지주회사를 만든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배 회장은 그 금융지주사의 인선위원회 멤버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오랫동안 금융계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지주회사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지금 막 공항에 나가려던 참입니다.”

 배 회장과의 통화가 끝난 뒤 이번에는 금융감독위원회 이근영 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주회사를 맡을 분은 아무래도 금융계 원로가 되어야 하는데, 윤 회장도 그중 한 분으로 추천되어 있습니다. 출장을 그만둘 수 없겠습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출장 취소는 곤란하다고 했더니 그러면 좀 빨리 귀국할 수 없느냐고 재촉하듯 물었다.

  그때서야 인선과정의 절차를 위해 필요한 일 때문이구나 하고 직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대답했다.

 당시 지주사 회장 후보로는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여러 인사가 언론에 거명되고 있었다. 이 위원장의 전화를 받고 ‘민간 출신 후보자를 포함시키기 위해 내 이름 석 자가 필요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2월 27일 인선위원들과 조찬을 했다. 위원장인 이규성 전 재무부 장관을 비롯해 학계 인사들과 식사를 하면서 하나은행 경영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조찬을 마치고 하나은행으로 출근하자 김승유 행장이 내 방에 들러 “회장님, 어떻게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지금 막 인선위원들과 조찬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김 행장은 그 말을 듣자 놀란 표정이었다. “만약 금융지주회사 대표로 선임되면 그 자리에 갈 겁니까” 하고 물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갈 일은 없소. 그냥 들러리를 서는 거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러자 김 행장이 말했다. “99.99% 안 된다손 치더라도 0.01%의 가능성으로 선임이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운명이라 여기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이틀 뒤인 2월 29일 오후, 금융감독위원회 정건용 부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날 오후 6시에 내가 금융지주회사 최고경영자로 내정되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발표하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0.01%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정부가 조직을 만들 땐 최고경영자를 누구로 할지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시키는 게 관례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금융지주회사의 경영은 금융계 경험이 많은 민간 인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정부도 당초 예정된 인사를 낙점하려 했다. 하지만 재경부의 젊은 관리들이 “그러면 다음날 아침 신문들이 관 주도 인사라고 난리를 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결국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정부사람들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내가 선택된 것이다.

 하나은행 후배들은 퍽 섭섭해 했다. “다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금융지주회사냐”는 것이었다. “정상화에 실패하면 윤 회장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컸다. 일부는 배신감을 느끼는 듯도 했다. 어떤 사람은 ‘은행장까지 해먹었으면서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 저런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나는 1997년 하나은행장을 그만두면서 “스스로를 위해 돈 벌려고 취직하진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자리에 갔으니, 다시 욕심이 생긴 걸로 본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때엔 취직을 했다는 생각을 안 했다. 봉사라고 생각했다. 금융계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기반이 무너져버린 금융을 하루속히 정상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평화·광주·경남 은행과 4개 부실 종합금융회사가 합쳐진 하나로종금을 자회사로 거느린 금융지주회사를 두고 언론과 정치권, 학계에서는 ‘부실덩어리를 더 큰 부실로 키우는 꼴’이라며 말들이 많았다. 2001년 4월 2일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정식으로 출범한 뒤에도 세간의 평가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내 할 일을 제대로 하리라 마음먹었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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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