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청춘예찬의 사회적 비용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청년세대가 역사를 만들던 시대가 있었다. 청춘의 맑은 영혼과 진취적 기상이 세상을 구제할 것으로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다. 19세 개화 청년 최남선은 젊은 세대를 문명 개조의 전위부대로 지목해서 국문 잡지 ‘소년’을 창간했다.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로 시작하는 창간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나라 잃은 못난 기성세대를 맹공하는 청춘의 포효였다. 그의 친구 이광수가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에서 실력 양성을 앞세운 청년 사명론을 설파했고, 뒤이어 최서해는 ‘혁명이냐, 사랑이냐’로 청년의 화두를 집약했다. 열혈 청년들이 혁명전선에 뛰어들었고, 더러는 연정에 불타 현해탄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식민통치로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어두운 시대여서 그랬던가, 청춘의 몸짓은 그 자체 역사였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오늘날, 우리의 청년들은 사랑도 혁명도 아닌 뭔가에 짓눌려 있다. “감성은 청춘의 가장 위대한 문화이자 개벽의 정신적 무기”라던 청춘예찬이 더 이상 공명을 일으키지 않는다. 사회 진입의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하고, 견고한 사회 규칙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역사 제조자로서 청년의 위상을 아예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상고(商高)를 졸업하고 중견기업 경리직에 취직한 똑똑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좀 더 나은 직장을 얻으려 대학에 진학했는데, 졸업이 임박하면서 다시 경리직으로 돌아갈 공산이 점점 커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게 220만 대학생들이 부딪히는 절망감의 한 단면이다. 한 줌의 치기와 낭만을 허용치 않는 치열한 경쟁에 던져진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정신의 로드맵을 공유할 사상가 한 사람을 제공하지 못했고, 사회 진출을 도와줄 그럴듯한 정책도 펴질 못했다. 이들의 인플레된 학력과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도 충분히 주질 못한다면, 자신들을 돌아볼 정신적 여유라도 허락해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배양하라고 그토록 다그침을 당하고도 시급 5000원의 알바와 저임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은 그런 사회 현실을 성난 얼굴로 돌아볼 여유도 없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고령인구 부양, 출산과 육아라는 세대적 책임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공약인 반값 등록금이 뒤늦게나마 거론되고 있는 게 그래서 반갑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대학교육을 미래 투자로 간주해 무상교육을 실시한 지 오래다. 그것은 청년세대에 대한 사회적 투자이기에 무상급식과는 급이 다른 사안이다.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부과하면 공공철학이 훼손된다. 영국과 그리스에서 대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은 교육으로 장사하는 세속적 국가다. 국공립대학 등록금이 평균 450만원, 사립대는 평균 750만원에 달한다. 입시생 사교육에 빚내고, 대학 등록금에 살림 줄이고, 결혼과 분가에 집 팔고 나면, 빈손의 고독과 병든 몸이 남는 게 한국 서민들의 생애 사이클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반값 등록금은 청년세대와 서민층에 인생 활력을 불어넣는 이중효과를 갖는다. 서민가계에 소득 지원 효과를 창출하고, 젊은 세대에겐 청춘의 미학을 음미할 여유공간을 만들어준다. 등록금 지원을 둘러싼 반론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고등학교 공납금은 그냥 놔둘 것인가, 대학 미진학자와의 형평성은 어떤가, 그 돈으로 차라리 일자리 창출이 더 시급하지 않은가 등의 질문들, 부실 대학과 나태한 학생들의 도덕적 해이, 대학 재정의 불투명성 등 대학 관련 비판들이 그렇다. 이런 쟁점들도 차차 개선해야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세대의 사회학적 의미를 살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역사는 세대 간 소통과 접전으로 진화한다. 경제적 부담과 진입 비용에 짓눌린 젊은 세대, 지적 모험을 포기한 청년들이 웅크리고 있는 나라의 역사는 진전하지 못한다. 다단계 판매직에 대학생 수백 명이 몰리고, 사회 진출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어쨌든 수습해야 한다. 등록금 지원은 허드렛일에 상상력과 창의성을 낭비하는 젊은 세대를 구출하라는 특급명령이자, 정신적 양식을 갖춰 개벽의 전위로 복귀하라는 기성세대의 엄숙한 권고다.

 그래서 반갑다. 경제성장에 온통 정신이 팔려 사회 투자를 내팽개친 한국의 정치, 눈앞의 이익 투쟁에 눈멀어 미래 기획에 무지한 한국사회가 모처럼 표명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본격적 관심인 것이다. 청춘예찬엔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청춘을 저당 잡힌 그들에게 진정한 청춘을 돌려주는 것이 반값 등록금의 의미라면, 이를 계기로 한국도 무상교육을 향한 먼 길을 나서야 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