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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전폭 지원 ...도자기는 고려.조선의 최대 벤처산업

1,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2007)2,아름다운 우리 찻그릇(2011)
세계 정상의 화랑 혼치 오브 베니슨(런던)에서 최근 개인전을 연 작가 신미경은 비누로 전통 도자기를 재현한다. 비누로 만든 그녀의 달항아리는 대영박물관에 전시가 되기도 했다. 브뤼셀의 알민 레쉬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 이수경은 깨진 도자기 파편을 금으로 이어붙인 작품으로 유럽에서 이름을 알렸다. 극사실주의 작가 고영훈은 창백한 석고 위에 조선조 청화백자를 담담히 그려냈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백자의 고운 결과 선을 에로틱하고 탐미적인 시선으로 찍어냈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우리 현대미술 작가들의 든든한 배후에 우리 옛 도자기들이 있다. 오랫동안 우리 고미술을 아껴온 컬렉터 김명성 선생은 “음식을 먹을 때 1단계는 배고파서 먹고, 다음에는 맛있는 것 찾고, 그러나 마지막에는 원래 먹던 음식으로 돌아가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대로 현대미술 한다고 고미술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절대미감은 서로 통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17> 윤용이 교수의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우리 찻그릇』


한국인 미감의 원천인 고미술 중에서도 도자기는 “선사시대부터 한국인들이 살았던 삶의 현장 어디에서도 발견”된다. 이것들은 한낱 그릇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오늘까지 한결같이 흐르는 큰 강물 같은 한국미의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명지대 윤용이 교수는 말한다. 한국 도자기를 꾸준히 연구해온 그의 저서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2007, 돌베개, 1만8000원)은 질그릇부터 시작해서 청자, 분청자, 백자로 이어지는 우리 도자기 전체를 다루고 있다. 최근 발간한 『아름다운 우리 찻그릇』(2011, 이른아침, 1만8000원)은 찻그릇을 중심으로 청자부터 백자까지 더욱 세분화된 영역을 다룬다.

두 권의 책이 공통으로 다루는 고려청자, 분청자, 백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자기는 중세 최고의 벤처사업이자 중요 국책 사업이었다.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도자기 기술을 둘러싼 한·중·일의 갈등과 역사는 지금의 산업전쟁을 방불케 한다. 10세기 후반 고려 광종은 청자기술로 유명한 오월국의 장인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도자기 기술을 이 땅에 정착시키고자 노력한다. 고려의 왕들은 강진에 왕실용 가마를 설치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그 결과 12~13세기에 이르러 천하제일의 비색 청자와 세계 어떤 민족도 흉내 내지 못한 상감청자가 등장하며 청자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고려청자의 완벽함과 이지적 세련미는 완숙한 고려 귀족사회의 미감을 배경으로 한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려 문장가 이규보의 ‘혁상인능파정기’를 인용한다. “실로 그들 고려인들의 상하에 일색으로 물들인 사상 감정은 바로 무상의 감이요, 허무의 감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로 시작되는 청산별곡을 부르며 세속의 혼란을 멀리하던 고려 귀족들의 세계에서 “청자는 그들의 파란 꽃”이었다. 고려청자와 불화는 고려가 세계 어떤 문화도 쉽게 도달하기 힘든 최고의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 고려는 우리에게 ‘Korea’라는 이름을 주었다.

청자와 백자 사이에 존재하는 분청자는 정권의 변화, 취향의 변화를 보여준다. 고려 말 유학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들은 질박하고 검소한 실용품을 선호했다. 빠른 물레질의 흔적이나 유약의 자연스러운 흔적을 보여주는 분청자들은 과정을 작품화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현대적이다. 수더분한 형태와 박진감 넘치는 문양에서 보여주는 “구애받을 것 없는 듯한 자유분방함과 숭늉 맛 같은 구수함과 익살스러움”이 매력이다. 그러나 고려청자보다 굳이 분청자를 한국미의 으뜸으로 꼽는 것은 일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냐는 최근의 반론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3 ‘청자상감연화문주자 및 승반’고려 13세기 전반,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주자 높이 17㎝, 밑지름 7.8㎝, 승반 높이 6.8㎝, 밑지름 17.5㎝
15~16세기 전라도·경상도 지방에서 제작된 분청자는 일본에 전해져 사랑받았다. 그중 하나인 정호다완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한국 도자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나친 욕구가 초래한 것이 임진왜란이다. 일본인들이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남원, 김해, 웅천의 사기장들이 납치되고 수십 년간 쓸 백자토까지 약탈된다. 이 도자기들은 도자토와 기술, 기술자 등이 모두 조선의 것이고 불만 일본의 것이었기 때문에 ‘불뿐만’이란 뜻의 히바카리란 이름이 붙여진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의 도자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도자기 사업은 수출 일선에서 최고의 부가가치를 낳는 사업이었다. 명·청 교체기의 혼란으로 중국 도자기의 유럽 수출이 불가능해지자 일본 도자기가 각광을 받았다. 유럽에는 지금 100만 점이 넘는 일본 자기가 존재한다고 보고된다. 일본이 도자기 수출로 벌어들인 부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도자는 내외적 혼란 속에도 자신만의 미감을 찾아냈다. 백자가 탄생한 것이다. 조선 초부터 왕실은 도자사업을 적극적으로 관리했으며 백자도 강력한 정부 지원을 통해 발전한다. 실학자 이규경의 말대로 흰색의 “청렴하고 결백함을 사랑”한 조선은 더욱 아름다운 흰색을 추구한다. 회백색 백자에 이어 17세기 말에는 유백색 백자가, 이어서 18세기 전반에는 마침내 고전적인 설백색을 띠는 백자가 등장한다. 설백색과 유백색 백자 달항아리의 등장으로 우리의 미감은 또 한번 세계적인 경지에 도달한다.

완숙한 백자의 등장은 영·정조간의 부흥과 실학의 번성기와 맞물린다. “청자와 백자라는 우수한 문화의 발전은 민족의 자기 발견, 자주성의 확립과 관련 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미술품 수집은 문화보국의 차원에서 행해진 애국운동의 하나였다. 한국미술사에서 잊지 못할 한 장면은 수수한 차림새로 도자기를 손으로 보듬으며 기뻐하는 간송 전형필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도자기 감상법의 팁을 준다. 도자기란 다른 예술품과 달리 실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옛 장인들은 손으로 만지는 촉각적인 감상을 충분히 고려해서 도자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결을 한 번이라도 만져봐야 완전히 이해할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책에 실린 도판이나 박물관 유리상자 속의 작품들을 눈으로 쓰다듬는 것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당장 윤용이의 책을 들고 박물관으로 달려가 도자기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우리 옛 미술의 아름다움에 취해보시길, 그리고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는 우리 작가들을 더 많이 아껴주시길.
kmedich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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