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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는 두 여성에게 남성 이전에 스승이었다

1977년 열린 손소희 도화전에 참석한 김동리-손소희 부부(왼쪽 사진). 김동리-서영은 부부의 1993년 모습. [중앙포토
손소희가 세상을 떠난 지 두어 달 후인 1987년 어느 봄날 저녁. 이문구와의 술자리에서 그로부터 “엊그제 동리 선생 댁에 행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무심코 던진 말이었으나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무슨 행사냐” 고 묻는다 해도 워낙 입이 무거운 이문구여서 소용없을 것이 뻔했으므로 그저 머릿속에 담아두기만 했다.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 1980년대 <13> 김동리손소희서영은의 기연

이튿날 출근하자마자(그 무렵 나는 다시 문화부 데스크를 맡고 있었다) 소설가이기도 한 양헌석 문학담당 기자에게 “김동리 선생 신변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으니 좀 알아보라”고 일렀다. 오후에 귀사한 양헌석은 “김동리 선생과 서영은씨가 며칠 전 서울 근교의 한 사찰에서 혼례를 치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 사실은 이튿날 신문 사회면에 보도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그해 김동리는 74세, 서영은은 44세였다.

이문구의 ‘행사’ 소리에 ‘짚이는 것이 있다’고 한 것은 손소희가 타계하기 얼마 전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손소희가 서영은을 불러 “내가 죽거든 동리 선생을 잘 보살펴 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죽음을 앞에 둔 상황이더라도 여러 해 남편과 이런저런 구설이 떠돌던 여성에게, 그것도 자식뻘인 후배 작가에게 남편을 ‘부탁’한다는 것이 얼핏 납득이 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손소희·서영은이 오랜 세월 동안 김동리를 단순한 배필이나 연인이 아닌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존경하고 떠받들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만은 아니다.

김동리는 그들 두 여성에게 남성이기 이전에 스승이었다. 손소희는 등단 초기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36년 발표)’를 읽고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격렬한 감동을 느꼈다”고 술회한 바 있고, 서영은은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60년대 초 ‘사상계’에 발표된 ‘등신불’을 읽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결국 소설가로서의 김동리를 향한 두 여성의 존경심과 김동리의 여성 편향적인 기질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사랑으로 발전했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그들이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소 우발적인 면도 엿보인다.

손소희의 경우 그의 오래전 기록을 보면 50년대 초 부산 피란 시절 김동리와 사랑에 빠졌을 때만 해도 부부가 된다거나 결혼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어떤 시인이 두 사람의 일을 부풀릴 대로 부풀린 흥미 위주의 스캔들(사실이 20%, 픽션이 80%였다고 한다)로 만들어 한 신문에 게재하면서 문단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자 “이 남자와 평생 함께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꼈다”고 술회했다. 이들은 곧바로 수복된 서울로 올라와 동거에 들어간다. 5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함경도 또순이’ 기질로 김동리를 보필하면서 함께 산 세월이 34년에 이른다.

서영은의 경우에도 곡절이 있었다.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사범대를 거쳐 건국대 영문과를 중퇴한 서영은은 67년 ‘현대문학’ 창작실기 강의를 들은 후 첫 작품 ‘교(橋)’를 완성하여 그를 지도했던 박경리에게 보여준다. 박경리는 만족스러워하면서 김동리에게 추천을 부탁하지만 김동리는 작품을 읽고 나서 ‘너무 수필적’이라며 추천을 미룬다. 서영은은 이듬해 같은 작품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응모해 입선하고, 69년 두 번째 작품 ‘나와 나’가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해 마침내 등단한다. 그때 ‘월간문학’ 편집장이 이문구였고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73년 김동리·손소희 부부가 ‘한국문학’을 창간했을 때 편집장에 발탁된 이문구가 서영은을 경리 겸 편집기자로 맞아들임으로써 김동리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김동리로서는 학교 시절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서영은 특유의 병적인 수줍음이나 비사교적인 성격에 처음부터 연민의 정을 느꼈을 법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당사자 외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지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여러 해가 지나면서 문단에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손소희의 귀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손소희는 대범했다. 펜클럽 회장을 지낸 김시철 시인의 회고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손소희와 함경도 동향이다. 김시철이 김동리와 서영은의 소문을 거론하면서 묻는다. “손 여사님, 어떻게 하셨기에 영감님을 밖으로 나돌게 합니까?” 손소희가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래도 난 아무렇지가 않아요! 나 대신 귀찮은 일들을 덜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좀 꼴사납고 자존심이 상하기는 해도….”

83년 서영은이 ‘먼 그대’라는 작품으로 제7회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이 작품은 서영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부남인 데다 무디고 이기적인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된 주인공 ‘문자’는 남자에게 온갖 수탈을 당하고 아이까지 낳는다. 마침내 아이까지 빼앗기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지만 주인공은 운명이 강요하는 형극과 정신적인 나태를 딛고 일어서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인다. 소설 속의 정황은 실제와는 사뭇 다르지만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그것을 초극하려는 의지는 그 무렵 서영은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87년부터 시작된 서영은의 김동리와의 정식 부부 생활은 95년 김동리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고작 8년으로 막을 내린다. 그나마도 마지막 몇 년은 병석에 누운 남편의 병수발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고, 남편이 타계한 후에는 유산 등의 문제로 첫 부인의 자식들과 오랫동안 법정 시비에 시달려야 했으니 서영은은 그런 일조차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까. 하지만 김동리가 세상을 떠나고 다시 10년쯤의 세월이 흐른 뒤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이제하와 함께 만났을 때 서영은은 밝고 활기차 보였으며, 무엇보다 전에 보지 못했던 화사한 모습이었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197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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