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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재앙 경고한 밥 딜런 ‘세찬 비가 ...’ 한국선 원뜻 알 수 없게 둔갑

오늘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다. 1972년 오늘 스톡홀름에서 열린 인간환경회의에서 유엔의 결의로 기념하게 된 날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온갖 ‘날’들에 비하자면 그 연원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환경 문제가 인류 최대의 문제로 떠오른 것은 50년도 안 된 일인 셈이다.
환경 문제와 노래를 함께 생각하다 보면 70년대의 흥미로운 작품 하나에 눈길이 머문다. 밥 딜런의 ‘세찬 비가 쏟아지네(A Hard Rain’s Gonna Fall)’(1962)를 번안하여 부른 이연실의 ‘소낙비’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12> 금지된 반전반핵반공해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 나는 안개 낀 산 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토길을 걸어다녔다오 / 어두운 숲 가운데 떠다녔었다오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 /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이연실의 ‘소낙비’, 1973, 양병집 개사)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유엔은 비공식 축가로 밥 딜런의 ‘세찬 비가 쏟아지네’를 선정했다. 이연실의 ‘소낙비’ 가사를 생각하면 이 선정은 다소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자연 속을 헤매고 다니는 가사가 워낙 자연친화적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할 법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한국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곡의 가사가 흔적도 없이 훼손된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이연실의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실린 이 예쁜 노래를 어릴 적 좋아했던 나는, 나이를 먹은 후 밥 딜런의 원곡 가사를 찾아보고는 기겁을 했다. ‘어디에 있었니’ ‘무엇을 보았니’로 시작하여,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듣고 보았다는 문답형 구조는 동일하다. 안개, 숲속, 바다, 늑대 같은 몇몇 단어도 일치한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원곡에서 보고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7개의 슬픈 숲속’ ‘12개의 죽음의 바다’ ‘늑대에 둘러싸인 갓난아기’ ‘피 흘리는 검은 나뭇가지’ ‘잘린 혀를 가진 만 명의 사람들’ ‘어린이의 손에 들린 총과 칼’ ‘불타는 손을 가진 백 명의 북잡이의 북소리’ ‘날카롭게 울부짖는 광대의 소리’ 등이다. 마치 묵시록에 나오는 인류 최후의 날을 보는 것처럼 끔찍하다.

밥 딜런의 이 노래가 나온 62년은 쿠바의 핵미사일 위험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미국이 쿠바를 공격하면 쿠바뿐 아니라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을까. 그렇게 보면 이 노래의 가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후렴에서 반복되는 ‘세찬 비가 쏟아지네’의 ‘세찬 비’는 폭탄일 수도 있고 핵 폭발이 일어난 이후 쏟아지는 방사능 비일 수도 있다.

62년의 이 노래는 ‘반핵’이라기보다는 ‘반전’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코펜하겐 회의에서 이 노래를 선정한 것은 이 작품에 들어 있는 핵에 대한 경고 메시지에 새롭게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73년 우리나라에서는 반핵은 물론 반전 역시 가수들이 입에 올릴 수 없는 내용이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우리나라 가요심의에서 ‘반전’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으로 명기되어 있었다.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은 원곡과 번역곡 모두 ‘반전’이라는 이유에서 금지되었다. 정말 기막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나쁜 짓이라니!

이 시기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을 치르고 있었고, 북한에 대해 ‘초전박살’ 같은 구호를 외쳤던 때이니 ‘반전’은 이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양병집은 ‘세찬 비가 쏟아지네’의 가사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고 원곡과는 지나치게 다른 번안곡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74년의 양병집 버전에는 ‘무덤들 사이에서 잠을 잤었다오’ ‘장난감 총과 칼을 가진 애를 보았소’ 정도가 더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원곡의 주제를 조금이나마 전달하기에는 크게 미흡했다.

대중가요계에서 반공해, 반핵 주제를 다룬 노래는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 검열 때문이었다고? 글쎄, 이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민망하다. 오랫동안 체제 순응의 태도를 지녀온 우리 대중가요계는 이런 내용의 노래는 만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민중가요’라 지칭되는 진보적인 노래운동 쪽에서는, 환경운동이 처음 시작되던 80년대 초·중반부터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들이 울지 않는 그날 봄은 침묵했고 / 강이 죽어간 그 가을 열매를 거둘 수 없었네 / 땅과 강과 바람을 버린 그날에 / 땅과 강과 바람은 인간은 거두지 않았네”(안혜경의 ‘침묵의 봄’, 1984, 안혜경 작사·작곡)

레이철 카슨의 1962년의 명저 제목을 딴 이 노래는, 침묵의 봄에 인간 역시 그 침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단순하고 예쁜 선율로 부드럽게 그러나 섬뜩하게 경고한다. 이 곡은 92년 안혜경의 합법적인 독집 음반이 나오면서 비로소 공식적 음반으로 발표되었다.

안혜경과 함께 환경 문제에 대한 노래를 열심히 지은 것은 ‘전진가’의 창작자 박치음이다. 금속공학 박사인 그는 공해문제연구소 등에 간여하며 ‘여러분 공해는’ 등의 노래를 지었다. 솔 분위기의 이 노래는 매 소절 ‘여러분 공해는’ 하는 가사로 시작하여 공해를 ‘생태계를 도막내는 절단기’ ‘죽음으로 질주하는 완행열차’ ‘요람에서 무덤까지 병든 건강’ ‘식탁 위 침묵의 살인자’ ‘태아의 목에 걸린 올가미’ ‘소비의 사생아 복종의 쌍생아’ ‘기업의 무지개 색 그림자’ 등으로 정의 내린다. 이후 그는 반핵 주장을 ‘반전’과 ‘반미’로 몰고 나가는 ‘반전반핵가’까지 짓기에 이르니, 이 시대의 반공해 주장의 노래로서는 가장 과격한 창작자였던 셈이다.

민중가요권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든 80년대 대중가요계는 여전히 침묵했다. 환경 문제에 대해 대중가요계가 뭔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세상이 바뀐 90년대 이후였다. 세상 바뀐 후의 이야기는, 나도 일주일은 쉬어야 얘기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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