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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30) 충무로와 명동




1999년 사라진 을지로 국도국장 전경. 대한극장스카라명보극장 등 서울 충무로 인근 극장가는 신인 배우 신성일을 스타로 올려놓은 기반이 됐다. [중앙포토]


길 하면 영화 ‘라 스트라다’(La Strada·이탈리아어로 길)가 떠오른다. 잠파노(앤서니 퀸)와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유랑 길을 잊을 수 없다. 1960년 무렵 서울의 길, 땅을 보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배고픈 탓에 길바닥에 뭔가 없나 해서다. 60년이라고 해봐야 종전 7년 후다. 제대로 된 건물이 없었다.

 50년대 후반 상경한 나는 충무로를 걷고, 명동을 구경하는 걸 낙으로 삼았다. 신세계백화점 맞은편, 충무로 1가에 빵집 ‘태극당’과 전축기기상 ‘기쁜 소리사’가 있었다. 두 곳 사이에 ‘영양센터’라는 치킨집도 처음 생겼다. 쇠꼬챙이에 닭을 꿰어 빙빙 돌려 구워대는 영양센터 쇼윈도는 보통 볼거리가 아니었다. 당시 배고픈 사람들에게 얼마나 침이 넘어가는 풍경이었겠는가.

 게다가 연통을 길 쪽으로 뽑아놓아 그 앞은 온통 닭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얼마나 콧구멍을 자극했던지…. 하지만 내 주머니 사정으론 어림도 없었다. 나중에는 약이 바짝 올라 그 앞으로 지나지 않고, 아예 태평로 큰 길로 돌아서 갔다.

 ‘한국의 할리우드’로 불린 충무로는 내게 의미가 각별하다. 서울대 공대·법대·의대 진학을 꿈꿨던 나는 그 길로 가지 못하고 충무로를 헤매다 신필름에 들어갔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은 영화계의 모든 시스템과 활동을 집약한 축소판이었다. 대한극장·을지극장·국도극장·명보극장·스카라극장·중앙극장 등이 모두 충무로 일대에 있었다.

 미도파백화점 맞은편, 명동은 충무로와 사뭇 달랐다. 신필름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명동에 갈 용기도 없었다. 충무로에서 만났던 손시향을 생각해보라. 마카오 신사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으로 쫙 빼 입은 듯한 장안의 멋쟁이가 명동을 누볐다.

 청춘스타가 된 후 1주일에 한 번은 명동에서 촬영할 일이 생기곤 했다. 나를 포함해 신영균·남궁원·윤일봉 네 명이 명동 거리를 걸으며 새로 생긴 음식점을 찾아 다녔다. 우리가 명동 거리를 지나가면 행인은 물론 상점 주인들도 죄다 눈인사를 했다. 명동은 내게 성공을 상징하는 길이었다.

 충무로의 길은 음식점으로 통했다. 충무로의 진고개, 종로와 명동의 한일관, 을지로 곰탕집 하동관, 청진동 선지해장국집 청진옥, 시청 뒤 콩나물 선지해장국집 부민옥 등이 단골집이었다. 지금도 예전 맛을 지켜가고 있는 음식점이다.

 신필름에 들어가기 전에 다녔던 배우전문학원도 우연히 충무로 길을 걷다 만났다. 나는 학원에서 러시아 최고 연출가인 스타니슬랍스키 배우수업을 받았다. 바닥에 선을 하나 그어 놓고, 그것을 문이라 연상한 채 연기를 공부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문을 넘나드는 연기를 연습했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과제였는지. 서민가족의 가장 역할로 최고였던 대선배 김승호는 “길 가는 사람은 모두 내 스승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활기차게 또는 무겁게 걷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관찰하라. 그게 연기 교본이다”라고 조언했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충무로·을지로·무교동·청계천 등을 걸어 다닌다. 얼마 전 시청 앞 광장에서 예쁘게 피어난 야생화 향기에 흠뻑 취했다. 얼마나 싱그럽던지. 74살 청춘의 ‘마이 웨이(My way)’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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