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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 “위대한 리더는 남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미 해군사관학교 내 스타디움. 이날 졸업식을 끝으로 해사를 마치고 초급장교로 임관돼 전 세계 전장(戰場)에 투입될 젊은이들이 도열했다.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68) 국방장관이 연단에 섰다. 게이츠 장관은 “이번이 장관으로 행하는 마지막 졸업식 연설”이라고 운을 뗐다. 후임자로 지명된 리언 패네타(Leon Panetta)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의회의 인준 절차를 마치는 7월께 게이츠는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는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 시절인 1966년 CIA에 들어간 뒤 빌 클린턴 대통령 때를 제외하곤 줄곧 공직을 맡아 왔다. 공군 장교로 복무한 뒤 CIA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직을 거쳐 2006년부터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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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게이츠가 마지막 연설의 주제로 선택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었다. 그는 “45년 전 공직에 입문한 뒤 공군·CIA·백악관·국방부에서 8명의 대통령을 포함해 위대한 지도자들이 걸어가는 길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며 “진정한 리더십은 매우 드물고 소중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위대한 지도자의 리더십 조건을 제시했다.




CIA 국장 시절의 게이츠

 게이츠는 첫째 조건으로 비전(vision)을 말했다. 그는 “어느 직급에 있든 비전을 통해 매일 벌어지는 오늘의 일과 문제들을 뛰어넘어 내일 이후를 바라보며 가능성과 잠재력을 분별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허풍 섞인 자기 중심적 자신감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조용한 자신감’(quiet self-assurance)을 강조했다. “지도자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성공의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며 “진정으로 자신감 있는 지도자는 결코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없는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다는 것이 내 공직 생활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시류에 영합해 인기 있는 일만 좇는 대신 옳은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도덕적 용기(moral courage)”라고 불렀다. “지도자는 혼자 서 있을 수 있어야 하고,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을 속이지 말고 진정한 용기를 택하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마지막으로 청렴(integrity)과 예의(common decency)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부하들을 존중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돌이켜보니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지도자의 리더십을 판단하는 신랄한 테스트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신한테 말대꾸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지도자에겐) 중요하다”는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게이츠는 공직생활을 회고하며 “1980년 4월 24일 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소회를 밝혔다. 당시 CIA 국장 특별보좌역이던 그는 백악관에서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잡혀 있던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을 지휘했다. “작전은 매우 위험했지만 솔직히 나는 성공할 줄 알았다”며 “그러나 특수부대원이 탄 헬리콥터가 불에 타는 것을 보면서 당시 베트남전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미국의 쇠퇴를 직감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하지만 이후 좌절하지 않고 인내와 결의로 특수작전 훈련을 개혁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4월 30일(미국시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헬리콥터 한 대가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31년 전의 끔직했던 기억이 떠올라 (또다시 실패할까) 마음이 착잡했다”고 토로했다.

 ◆"워싱턴에 게이츠의 적은 없다”=로버트 게이츠 장관은 공화당 소속이다. 그런데도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 이어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에서도 국방장관 직을 맡았다. 2개의 전쟁(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수행 중인 상황이 우선적으로 고려됐지만, 게이츠 개인의 치밀한 상황 판단·분석능력과 온화한 성품도 큰 배경이었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중론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게이츠 장관에겐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라고 전했다. 게이츠는 해군사관학교 연설 말미에 “국방장관으로 일하기 시작한 날부터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친아들·딸로 여기며 내 책임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게이츠 장관의 한국 및 아시아 방문 동행 취재 당시 곁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도 평소 워싱턴에 나돌았던 평판과 일치했다. 게이츠 장관은 한국으로 향하는 국방장관 전용기 내에서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나 웃는 얼굴로 기자석과 참모석을 일일이 돌며 격려했다.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방문 때 동성애자들의 군 복무 허용 문제 등 주한미군 장병들의 각본 없는 질문이 쏟아졌다. 더운 날씨에도 양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연병장에 꼿꼿하게 서서 1시간이 넘도록 질문에 성심껏 대답하는 게이츠 장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천상 국민의 공복이었다. 그가 당시 보여준 리더십의 본질은 겸손함이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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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