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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탐사] 역사 기록, 그 반란의 유혹




박보균
편집인


역사는 현재를 장악한다. 역사 공간을 접수한 세력이 한 시대의 이념과 비전을 우월적으로 생산한다. 역사는 미래도 지배한다. 오늘의 역사는 다음 세대의 상상력을 압박한다. 문화 권력은 역사 권력이다. 때문에 역사 기록과 교육의 논쟁은 격렬하다. 내전(內戰)을 겪은 나라일수록 험악하다. 6·25전쟁을 겪은 한국이 그렇다. 미국도 비슷한 요소를 갖고 있다.

 남북전쟁은 미국의 내전(Civil War·1861~65)이다. 북부(연방·Union)와 남부(연합·

Confederacy) 주(州) 사이의 전쟁이다. 수도 워싱턴을 기점으로 위아래로 나눴다. 그것이 노예제 폐지·존속의 경계선이다. 올해가 내전 발발 150주년이다. 요즘 미국에선 재현 행사와 세미나가 풍성하다.





 버지니아주의 주도(州都) 리치먼드-. 전쟁 때 남부연합국가(CSA)의 수도였다. 1861년 남부 11개 주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방에서 탈퇴했다. 새로 나라를 만들고 대통령(제퍼슨 데이비스·사진)도 뽑았다. 리치먼드에 그 대통령의 백악관이 남아있다. 2층 집무실에 데이비스의 대형 초상화가 남부연합 깃발과 함께 걸려 있다. 그 방은 남부의 전설과 명예를 상징한다.

 안내자는 이렇게 말한다. “데이비스는 주 자치를 내세웠다. 주 자치는 미국 건국 정신이다. 각 주가 자유 의사로 연방에 가입, 탈퇴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링컨의 연방 우선에 저항한 것이다. 데이비스는 전쟁 패자다. 하지만 남부의 전쟁 명분과 대의(大義)마저 패배한 것은 아니다.”

 링컨은 미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뽑힌다. 하지만 남부의 역사현장에선 홀대 받는다. 리치먼드 중심가에 데이비스의 위압적인 동상이 서있다. 하지만 링컨 동상은 조촐하다. 그의 신체 크기 정도다. 2003년에 세워졌다. 놀랍게도 그것이 남부 전체에서 최초의 링컨 동상이다. 박물관 관계자에게 물었다.

 - 링컨은 남부에선 별로 기억되지 않는다.

 “내전의 후유증은 오래간다. 남북전쟁은 전사자 62만 명의 참담한 재앙이다. 같은 국민 사이의 전쟁으로 인한 원한과 미움은 많은 세대에 걸쳐 기억된다. 외적에 대한 적개심보다 거칠다. 링컨의 재통합 업적은 인정한다. 하지만 전쟁 패배로 남부의 고유한 문화가 사라진 데 대한 상실감은 남아있다. 링컨을 정서적으로 승복하지 않는 게 남부 역사다.”

 남부는 파괴됐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북부의 초토화 공격은 남부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었다.

 북부는 리치먼드와 다르다. 워싱턴과 리치먼드는 자동차로 2시간 반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남북전쟁에 대한 시각차는 엄청나다. 그리스 신전 같은 거대한 링컨 기념관(워싱턴)과 소박한 링컨 동상(리치먼드)처럼 대비된다. 게티즈버그 역사학회(북부) 회원과 만났다. 알렉산더 맥도월(54)은 교사 출신의 향토사학자다. 그에게 리치먼드의 경험을 전했더니 이렇게 반응한다.

 “남부의 역사 시각은 독특하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인정한다. 남부의 로버트 리 장군은 북부도 존경한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 평가에 한쪽의 시각이 지나치게 개입되면 편향되고 불편해진다.”

 -남북전쟁 150주년이다. 아직도 남부가 정서적으로 링컨을 수용하지 않는 이유는.

 “링컨은 협상 평화를 거부했다. 완벽한 승리만이 미국을 재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링컨은 철저하고 잔혹하게 전쟁을 수행했다. 하지만 남부의 항복 순간 관용과 사면을 베풀었다. 링컨은 연방 탈퇴와 전쟁 책임을 남부 정치인과 장군들에게 묻지 않았다. 전범(戰犯) 없는 전쟁으로 끝냈다. 그 반전(反轉)은 링컨의 위대함이다. 데이비스도 사면 혜택을 받았다.”

 - 남부와 북부가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 기록과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굴절 과 왜곡을 시도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지적은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 기록은 반란의 유혹을 받는다. 역사의 재해석을 통해 왜곡과 편향을 음모한다. 김영삼 정권 때 국사 과목은 필수에서 선택으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종북(從北)좌파들은 교묘히 활용했다. 그들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현대사는 잘못됐다”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을 퍼뜨렸다. 그 대신 김일성·김정일을 우호적으로 묘사한다.

 이명박 정권은 국사 과목을 필수로 환원했다. 이는 자학사관을 퇴출시키라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다. 이제 제대로 된 교과서가 나와야 한다. 현대사 기록의 진실 무대를 탈환해야 한다. 그것은 다음 단계 국민적 요구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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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