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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이키섬





대마도(對馬島·쓰시마)가 우리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줄 아는 사람도 그곳에 조선식(朝鮮式) 산성이 있는 줄은 잘 모른다. 조선식 산성은 백제식 산성이란 뜻이다. 『삼국사기』와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서기 663년 서해의 백강(白江) 어귀에서 신라·당 연합군과 백제·일본연합군이 대해전을 벌였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서기』 천지(天智)천황 조는 이때 일본이 보낸 백제구원군의 규모를 2만7000명이라고 적고 있다. 백제는 660년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백강 대해전에서 신라·당연합군에 패전한 663년 8월 멸망한 것이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이키·쓰시마의 길(壹岐·對馬の道)』에서 “통일신라군이 승리의 기세를 타서 일본을 공격하려 했다”고 썼다. 신라·당 연합군이 일본까지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막기 위해 조선식 산성을 쌓은 것이다. 1차 저지선이 대마도 미즈시마(美津島) 흑뢰성산(黑瀨城山) 꼭대기의 가네다성(金田城)이다. 『일본서기』 『천지(天智)천황』 6년(667)조는 “대마국(對馬國)에 금전성(金田城)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2차 저지선이 대마도에서 후쿠오카(福岡)로 가는 중간에 있는 이키섬(壹岐島)의 조선식 산성이다. 『일본서기』는 664년 대마도와 이키섬에 “방인(防人 : 수비병사)과 봉화(烽火)를 두었다”고 적고 있다. 이키섬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최북단 가쓰모토 마치(勝本町)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침략 1년 전인 1591년 섬의 영주 마쓰라 시게노부(松浦<93AE>信)에게 쌓게 한 가쓰모토성(勝本城)이 있다. 가쓰모토 성에서 대마도와 부산 쪽을 향해 조금 걸어가면 절벽 위에 석성의 흔적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백제인들이 쌓은 조선식 산성이다.

 백제의 결사대가 지켰던 이키섬이 백강해전 900여 년 후에는 조선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었으니 역사 또한 인생처럼 유전함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는 백강 전투에서 패전하고 백제 부흥군의 수도인 주류성까지 함락되자 일본의 지배층들(國人)이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그곳을 언제 다시 가볼 수 있겠는가(丘墓之所, 豈能復往)”라고 한탄했다고 전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일본인들의 뜬금없는 정한론(征韓論)의 배경이 한반도를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인식했던 그들 선조들의 고향 회귀본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이키섬의 조선식 산성을 거닐면서 들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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