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진현미의 아티스트 인 차이나(9) 현대 미술가 탕쯔강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 그 부조리함에 폭발적 반응







▲1 ‘chinese fairytale’(2006), 162x130cm



작가 탕쯔강(唐志岡)이 주문한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요리와 요리 간 맛의 조화도 훌륭했다. “놀라운 능력”이라고 했더니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림도 그릴 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색·향·형태가 좋은 음식은 작품과도 같은데, 어느 타이밍에서 얼마만큼의 양념을 넣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오묘하게 차이 나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란다.그의 아틀리에는 베이징 지우창 예술구에 있다. 술 공장을 개조한 로프트식 아틀리에는 원래 두 집이었다. 옆집에 살던 작가 장샤오강이 이사를 가면서 비운 아틀리에를 하나로 터서 제자와 나눠 쓰고 있다. 아틀리에에는 과거 연작 시리즈부터 2009·2010·2011년도 작품들이 지난 시간을 대표하듯 한 점씩 걸려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인민복을 입고 행군을 하고 거수 회의를 하는 미팅 시리즈, 위험에 노출된 수십 명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에메랄드 시리즈 등 ‘탕쯔강 스타일’로 그는 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97년도까지 어른들의 미팅을 그렸습니다. 역사적 흔적이 보인다며 정치적 경고를 받았어요. 그래서 99년부터 아이들로 바꿔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문화 전략이었죠. 어른을 어린이로 대치한 그림은 세상을 거울에 비춘 것 같은 반사 작용을 했습니다.”

정치적 회피를 위해 어른을 아이로 바꿔 그린 것뿐인데 달라진 그림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트미아 갤러리 진현미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탕쯔강의 그림 속 아이들은 어른의 삶을 삽니다. 평론가들은 이것이 개방화 이후 현대 중국인들의 모습이라고들 말합니다. 외형적으로는 급성장했지만 미성숙한 현대 중국인들의 모습을 비판한 그림이라고요. 그러나 정작 작가는 본인이 가장 익숙한 환경과 사회를 그림에 반영한 거예요. 회의를 세팅하고, 행군을 하는 모든 일들이 군인이었던 그에게는 일상이었으니까요.”



20년간 군인으로 근무하며 8년 동안 부대 내 자녀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던 경험은 특별한 표현력으로 발현됐다. 그림 속 수십 명의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면 그 표정과 개성이 모두 다르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아이들의 캐릭터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결국 따뜻한 시선을 가진 세심한 관찰자인 작가가 읽힌다.

“장샤오강이나 예용칭은 다른 걸 똑같이 그리려고 하는데, 난 똑같은 것도 모두 다르게 그리려고 합니다. 아이를 가르치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림 속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캐릭터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죠.”













▲2 탕쯔강(왼쪽)과 진현미 대표.



지난 시절, 획일화된 군대 사회에서 선전 포스터를 그리는 일이 주 업무였던 그의 감수성 어린 그림은 군에서 보자면 불온한 것이었다. 고위 관직이었던 부친이 아니었다면, 상대적으로 그림에 관심이 낮은 지방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반동으로 내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사지로 내몬 건 아버지였다. 이미 징집에서 제외되었는데, 어디선가 헬리콥터가 날아와 납치하듯 자신을 태워 그 길로 베트남 전장에 떨구었단다.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남자가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베트남 최전선으로 배치되어 4년을 포화 속에서 살았다. 낮에는 진격하는 전쟁터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밤에는 혁명 영웅들을 고무시키는 영화를 틀었다.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한 건 참전 후. 예술로 혁명은커녕 밥도 먹고 살 수 없다고 믿은 아버지는 그의 예술학교 진학을 반대했다. 자신을 예술가로 만든 건 단연코 어머니의 힘이었다고.

“1부터 100까지 제대로 세지도 못하는 아이가 그림은 습자지에 베껴 그린 것처럼 똑같이 그렸어요. 그때 어머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밖에는 다른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으셨던 거죠. 또한 그것이 당신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도.” 밥벌이를 걱정했던 당신의 아들이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도 모른 채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그는 몇 년간 방광암으로 투병했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쳐 현재 일주일에 한 번가량 통원 치료 중이다. 다행히 죽지는 않는 병인데, 그렇다고 완치도 되지 않는다. 수술을 통해 죽음과 삶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인생의 순환을 온몸으로 겪은 작가는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정신세계로 보지 않고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만을 믿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치료가 왠지 아플 것 같다는 정신적 상상만으로 도망쳤다 더 큰 병을 만들어 결국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병만 키웠음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러한 변화는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소한의 필치로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습니다. 내 안에 채움이 없던 시절엔 그림도 복잡했어요. 색도 많고, 선도 많았죠. 심리적 장애가 많아질수록 그림이 단순해지더군요. 아마 더 단순해질 것 같아요. 두세 가지 컬러만으로 작품이 완성될 겁니다.” 아틀리에에 걸려 있는 최근작들은 한결 간결해지고 말갛게 변화돼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이들을 그려내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결혼이라는 높은 문턱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고. “지금이라도?”라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와서 넘어야겠나?”



군대라는 통제된 삶, 전쟁, 질병…. 온갖 소란에도 탕쯔강은 길을 잃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강건한 자아를 지켜왔다. 아마도 그 힘은 손님을, 제자를 가족처럼 챙기는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로 돌아와 탕쯔강의 아틀리에를 떠올리니 그림 속 아이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자신의 일에 열중한 모습이 풍경처럼 떠올랐다. 부디 신작 전시회에서 조만간 다시 만나기를.



◇ 탕쯔강(Tang Zhigang)=1959년 윈난성 출생. 정치 선전교육 업무를 전담한 군인이었다. 부친의 뜻에 따라 베트남-중국 전선에 배치됐다. 뒤늦게 그림공부를 시작, 해방군 예술학원을 졸업하고, 퇴역 후에는 윈난예술학원에서 유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식처럼 거둔 제자가 3명이다. 그중 소걸이라는 제자는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였는데, 지금은 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윈난미술학원에서 미술선생을 하며 이제는 세 식구가 함께 스승을 찾아온다고 했다. 그는 어른들의 삶을 사는 아이들 그림으로 현대 중국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Child meeting’ ‘Child fairytale’ 시리즈로 명성을 얻었다.



◇진현미=영어 이름 미아(Mia). 베이징 다산쯔 차오창디 예술 특구에서 자신의 갤러리 ‘ARTMIA(아트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블루칩 작가들과의 만남을 중앙SUNDAY 매거진과 리빙 매거진 ‘레몬트리’에 연재하고 있다



베이징 정리 이호선 리빙 매거진 ‘레몬트리’ 편집장,사진 문덕관 lamp studio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