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26) 오토바이 사고





마주오는 차와 정면충돌 … 촬영 걱정에 마취도 않고 꿰매



신성일의 출세작이 된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1962)의 한 장면. 이민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신성일(맨 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어머니 말씀이 맞았다. 기회를 한번 움켜잡자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부산에서 ‘아낌없이 주련다’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김수용 감독의 청춘영화 ‘사춘기여 안녕’ 주연 제안이 들어왔다. 이민자와 불꽃 로맨스를 연기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코미디 영화의 대가였던 김 감독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청년 역으로 나를 캐스팅했다. 나는 의정부에서 일주일 동안 250㏄ 야마하 오토바이를 타며 촬영에 대비했다. 돌이켜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아낌없이 주련다’를 찍으며 한 단계 도약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도 장면을 바꾸고 하지만 유현목 감독은 그런 일이 없었다. ‘오발탄’에서 사실주의 영화의 정점을 보여준 그는 현장에 시나리오 수정본을 갖고 오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더는 고칠 게 없도록 말이다. 또 한 치의 오차 없이 배우를 움직이게 했다. 배우들은 진을 뺄 정도로 리허설을 많이 해야 했다. 이런 유 감독을 견뎌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사춘기여 안녕’ 촬영 중 불의의 사고가 벌어졌다. 원남동 로타리에서 돈화문 입구까지 촬영이 있던 날이었다.



카메라가 일반 영업용 차량 뒷트렁크에 탄 채, 뒤따르는 나를 촬영했다. 촬영장비가 열악했던 때였다. 감독은 조수석에 탔고, 촬영조수가 카메라 옆에서 피사체의 거리를 맞춰 조정했다. 요즘은 200㎜ 망원렌즈로 25m 떨어진 거리에서도 당겨 찍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45㎜ 스탠더드 렌즈로 찍었다. 배우가 3m 거리에서 바싹 따라붙어야 했다. 너무 느리게 가면 맥 빠지는 화면이 나왔다.



 외국에선 스크린 프로세스(Screen Process)란 기법으로 이런 장면을 소화했다. 배우는 차나 오토바이에 가만히 앉아있고, 미리 찍어놓은 배경과 합성하는 방식이다. ‘로마의 휴일’(1953) 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야 스크린 프로세스를 활용했다. 영화 ‘길소뜸’이 KBS 이산가족 찾기 필름을 배경으로 써서 김지미와 합성한 게 좋은 예다.



 돈화문 부근에서 촬영차가 신호등에 걸리며 갑자기 서버렸다. 오른쪽에 구경꾼 차량이 따라붙고 있어 나는 오토바이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오토바이는 중앙분리선을 넘어가 맞은편 차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내 몸은 공중으로 붕 떠 주유소 스탠드에 박혀버렸다. 오른쪽 다리가 뻐근해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오른쪽 바지가 다 찢어졌다. 오른손 밑이 까지고, 오른쪽 다리는 피투성이가 됐다. 땅을 짚고 일어나보니 피로 덮인 오른손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살점이 푹 파이고, 약 10㎝가량 찢어졌다.



 의사는 마취하고 꿰매면 회복이 늦어지고, 마취 안 하면 회복이 빨라질 것이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영화 촬영은 하루하루가 돈이다. 주인공인 내가 누워있으면 스태프 인건비, 장비 대여비가 등이 쌓이게 된다. 마취 안하고 꿰맨 후 일주일 동안 가회동 하숙집에서 요양했다. 투지 넘치는 배우로 인정받고 싶었다.



 일주일 후 ‘아낌없이 주련다’ 초대 시사회가 단성사에서 열렸다. 주연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내 모습은 처연하게 보였을 것이다. 검정 수트와 넥타이, 흰 와이셔츠에 붕대 감은 손을 받침대에 넣은 채로 손님을 맞이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